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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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개서

1987년 서울 출생. 2남매 중 장녀.

부족했지만, 물질적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저의 어린시절의 경험은 지금의 저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저희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사들고, 집 근처의 "자애원"이라는 고아원에 저를 데리고 가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대학공부를 시작하셨지만, 교육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따내셨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내 열정과 노력만으로 내 삶을 스스로 일굴 수 있고, 나아가 타인의 삶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저의 어린시절 내내 몸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한 어린시절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직후부터는 보험회사에서 경영지원(인사총무)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셨던 따뜻함과 열정, 노력을 온전히 쏟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첫 2년간은 새로운 업무를 재미있게 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회사도 그러하듯 인사총무라는 업무는 기대하던 부류의 "따뜻한" 직무는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여러번의 M&A를 거쳤던 금융회사로서 구조조정이라는 업무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했고, 사람 대 사람으로 직원을 바라보고 대하기 어려웠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수익을 내는 것" 이외의 다른 목표는 바라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직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직원을 돈과 성과로만 환산해 계산하도록 강요되어진 업무들은 저에겐 곤욕이었습니다.

다행히, 결혼 후 남편의 배려 덕에 5년동안 쌓아온 인사총무라는 직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화려한 결혼문화"를 미덕으로 하던 때에, 합리적인 결혼문화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저와 친구는 온라인에서 "셀프웨딩드레스"를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수입 업무를 위해 중국에도 사무실을 두면서 수천벌의 드레스를 검수하기도 했고, 수 많은 고객들을 상담했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덕분에 합리적인 웨딩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 드레스를 입고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다. 라는 등의 후기를 볼 때면,
이전에 하던 관리 직종보다 훨씬 큰 보람과 흥미를 느꼈습니다.

사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만 시작했던 것인지, 저의 첫 사업은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 우연한 기회에 "아모마 코리아"의 채용공고를 발견했고, 홈페이지에 기록된 많은 사업들과 비전을 통해, 이 곳이면 내가 가진 가치가 재미있게 녹여질 수 있는 곳일 것이라는 생각에 지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무척 행복할 정도로 일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태도를 오롯이 반영해나가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쇼핑몰 운영과 관리라는 업무는 흥미로우면서도 앞으로 배울점이 참 많은데, 단순히 이 업무를 통해 매출을 늘리자라는 비젼만 있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매출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돕자!라는 비젼이 함께 있기에, 좀 더 보람을 가지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회장님께서 한국을 찾으셨을 때, 물질보다 더 큰 가치에 대해 오래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 대화를 통해 물질은 부수적인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보이고 매출의 오르내림이 보이는 매일의 현장에서, 이겨야 한다, 매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속에 그러한 생각을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중에, 다시 보더리스의 멤버로서 미얀마와 케냐에서 사업하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정신차리게 됩니다. 그런일들이 반복되는 환경 속에, 그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가장 큰 챌린지 입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함을 위안삼으며.
보더리스의 "소셜 비즈니스"라는 가치를 어떻게 구체화 시켜야 하는지, 오늘도 생각하고 재미있게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