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会起業家ブログ
Jul.
05

사파리가 펼쳐져 있는, 농업이 발달한 IT신흥국!?(From Chales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7)~

Mambo? Poa!(How are you?Cool!)

올해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입니다. 그러고 보니, 케냐의 농촌에서 1개월 동안 일하면서 5kg의 다이어트에 성공했지만,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도로 살이 쪘습니다.

이전 블로그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의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에 사는 여러분은 좀처럼 상상도 못할, 케냐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케냐에서 일을 하거나, 놀러 가거나, 살거나 할 때 참고하세요!

~인구~

케냐에는 42개 부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족이라고 하면, 야마토 민족, 아이누, 류큐, 조선계열, 중국계...그리고 EXILE TRIBE정도? 일본인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네요.(웃음) 일본에서도 유명한 부족은 역시 마사이족입니다. 케냐의 국기에도 마사이 족의 방패와 창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사이족의 인구 비중은 주요 민족 랭킹 톱 10 안에 들지 않습니다. 제일 인구가 많은 것은 키쿠유 족.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는 이 부족 출신입니다. 알파지리의 거점이 있는 마을 미고리에서는 인구 비율 4위를 차지고 하고 있는 오루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언어~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입니다. 스와힐리어는 서 아프리카 지역 공통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공교육을 받은 국민은 모두 영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 거리의 간판, 학교의 교과서 등은 대부분 영어로 되어있으며, 아프리카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영어만 알면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부족에는 각각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케냐 국민은 자신의 부족어, 스와힐리어, 그리고 영어 3개국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다!라고 알려진 일본과는 딴판이네요(웃음).

또 현지인들의 대화에는 같은 부족끼리는 부족어로 다른 부족끼리는 스와힐리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 밖에 못하는 저에게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이 힘들었습니다(웃음).

~의복~

기본적으로는 일본인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면, 케냐 국기 문양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일장기 무늬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볼 수 없죠. 다만 미고리의 농민들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있거나, 그들이 쇼핑에 가는 시내에 헌 옷 가게가 많이 늘어서 있거나 해서 현지인에게 있어서는 새 옷을 손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비록 새 옷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멋쟁이였습니다. 이는 저의 독단과 편견임을 사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웃음) 일본인의 치장은 무난하다고 할까, 차분한 색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케냐인들은 시내에 나갈 때나 집회에 참석할 때 교회에 갈 때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멋을 부렸습니다. 화려한 무늬가 많아서, 산뜻하고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사이족 사람들이 마사이 천을 입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낯익은 붉은 체크무늬의 천도 있고, 노랑, 파랑, 녹색 등 여러 가지 색의 천을 입고 있었습니다. 모두 우아하게 차려 입고 있었으므로, 나도 일본에서 입어서 유행시켜야지!라고 생각해서 선물로 샀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캉가라고 하는 스와힐리어 이름이 붙은 천을 입은 여성도 많았습니다.

~식사~

케냐인의 주식은 우갈리. 옥수수와 카사바, 밀렛(펄 밀렛)등의 가루를 물에 풀어 반죽해서 만듭니다! 인터넷에서 "맛없는 비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입안이 푸석푸석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쌀을 사랑하는 일본인에게는 낯선 음식인 것은 틀림없습니다!(웃음) 케냐인의 우갈리 사랑은 대단해서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잔뜩 쌓여있는 우갈리를 칼로 각자 원하는 만큼 잘라먹었습니다.

우갈리와 함께 고기나 생선, 수쿠마(케일)란 채소를 먹는 것이 케냐 스타일.

이 외에도 얇은 크레이프 같은 빵의 차파티, 다진 고기와 콩을 넣은 껍질을 튀긴 스낵인 사모사, 우유를 섞은 홍차 차이 등... 어라? 알아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모두 인도 요리 아닌가?! 사실 케냐의 식생활에는 인도 등 남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의 영향이 짙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또, 포리지라는 곡류를 끓여서 죽으로 만든 것도 케냐인들은 즐겨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죽보다는 팥죽?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농민 분의 댁에 가면 컵에 가득 담아 주지만 힘내서 절반 정도를 마시는 것이 겨우였습니다(웃음).

~주거~

농민들의 상당수가 목재와 흙벽, 초가지붕이나 함석지붕으로 만든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축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공통된 것은 손님을 불러들일 것 같은 큰 방이 있는 건물이 있는 것, 가축을 숨기는 오두막이나 공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명은 태양열 집열판을 지붕에 설치해서 발전을 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수도도 제대로 뚫려 있지 않아서, 근처에 물을 길어올 수 있는 곳에서 조달. 가스 대신 모닥불로 요리를 만들고, 목욕물을 데웠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밭 속의 노천탕"이었습니다. 가옥의 뒤쪽에 함석으로 삼면을 둘러싼 욕실이 있고, 거기서 통에 모아놓은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 몸을 씻는 것입니다. 홈스테이를 했을 때, 처음에는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밖에서는 벌거벗기 싫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무래도 좋아졌습니다(웃음).

벽돌로 지은 집들도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벽돌을 쌓아올리고 굽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벽돌로 지은 집은 permanent house(뜻:내구성 있는 집)으로 불리며 이를 짓기 위해서 저금하고 있다고, 홈스테이로 머물렀던 집의 주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통~

현지의 공공 교통수단은 마타투라는 승합 버스(일반적으로 도요타의 하이에이스 중고차가 많았습니다)나 툭툭이라고 부르는 오토바이 택시, 도시 간을 이동하는 고속버스가 일반적입니다. 마타투는 좁은 차내에 손님을(가끔 닭도) 가득 태우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립니다! 이곳은 도로가 2차선뿐으로, 앞선 차량을 추월할 때는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 맞은편에서 차가 올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실제로 마타투는 사고가 많은 편으로, 마타투의 차 안에는 사고 주의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는 사정이 좋지 않고, 오토바이로 운전수 뒤에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수도 없이 아파졌습니다. 또 때마침 우기에 인턴 활동을 해서 그런지 집중호우로 도로가 엉망이 된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를 주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장자리의 도랑에 타이어가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처럼 견인차 같은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 자리에서 동석했던 현지인들끼리 힘을 모아서 차를 빼냈습니다.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일본 기업의 제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신차는 없고 중고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길에서 갑자기 소나 닭이 튀어나와서 차로 칠 것 같은 경우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웃음).

~경제~

케냐 경제의 큰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농업과 농업 관련 산업, 관광업입니다. 농업품 수출은 홍차, 커피, 절화가 큰 점유율을 차지합니다. 케냐라고 하면 커피를 떠올리는 것도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이미지지요!

절화는 네덜란드 등 유럽의 시장에 장미 등을 수출하고 있어 국내에 온실이 있는데, 저도 나이로비 근교의 나이바샤 호반에 있는 대규모의 장미 온실을 보고 놀랐습니다.

관광업에서는 사파리의 존재가 큽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진짜 사파리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사파리가 아닙니다. 저도 인턴 수료 후에 3개 사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야생 동물들과 멋진 자연에 둘러싸이면, "아, 지금 엄청나게 아프리카를 느끼고 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 IT의 발달도 두드러지는 케냐. 사실 케냐 전체의 휴대 전화 보급률은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고리의 농가들도 거의 한 집에 한 대씩(폴더형 휴대폰)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케냐의 모바일 업체가 제공하고 있는 모바일 뱅킹 서비스 "M-PESA". SMS 기능을 사용해서 계좌를 만들어 돈을 송금하거나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작은 상점이나 식당에서 결제도 가능합니다. 알파지리가 농민들과 돈거래를 할 때도 M-PESA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에 의해서 은행 이용이 힘든 빈곤층의 사람들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모바일 뱅킹이 보급되지 않고 있는데, 케냐는 이 분야에서는 모바일 선진국에 다가가고 있는 거 아닐까요?!

또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실리콘 사바나"라고도 불리고 있어서, 세계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점점 모여들면서 IT 산업의 점진적인 발전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제 설명을 통해서 케냐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기 쉬워지셨나요? 다음에는 케냐의 생활 상황을 바탕으로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활동에 대해서 보고하고자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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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5

“그래, 케냐에 가자.”(From Charles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6)~

Jambo!Habari yako?(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기분은 어떠세요?")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에 걸쳐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알파 지리)에서 인턴으로서 활동하고 있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라고 합니다. 케냐에서 귀국하고 2개월이 지났습니다. 절찬 케냐 앓이 중입니다. 현지에서 들었던 지역 음악과 레게 음악을 YouTube에서 끊임없이 듣고 있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케냐와 아프리카가 나를 부르고 있는데! 반드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내가 알파지리 인턴에 지원한 세 가지 이유

도대체, 왜 아프리카에서의 소셜 비즈니스 벤처에서 인턴활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경력의 방향을 정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산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떤 느낌이고, 나에게는 그 삶을 다할 각오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라는 것입니다. (장대하네요... (웃음))

저는 어린 시절부터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일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서도 건방지게도 이런 것을 적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개발도상국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구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다양한 일을 해서 세계의 사람들을 내가 가진 힘으로 구하고 싶습니다.」

소심하며 스포츠도 몹시 서툰, 전혀 "힘" 없는 소년이 영웅이 되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했던 거죠.(웃음)

고등학교 중 1년 정도 유학을 하고, 대학은 국제 공공 정책을 배울 수 있는 학부를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마음껏 공부하고 개발도상국에 많이 가서 현장을 보고, 국제기관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국제 협력 관계를 하는 곳에 취직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대학생활 4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은 고향의 시의회 의원 아래에서 인턴십을 했습니다. 다음 해 봄까지 현 의회 의원 선거의 스태프를 맡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에는 도쿠시마에서 개최된 고등학생 여름학교의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1년간 활동. 어라...? 전부 국내 활동이잖아(웃음) 그리고 일본주 동아리라니 대체 뭐야, 술 마시는 동아리?(웃음)

이렇듯이 장래의 경력으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것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봄 방학에 "그래, 케냐에 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즈니스에 의한 사회 과제의 해결의 구조를 실제로 보고 검증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제기관이나 NGO, NPO 등과 같은 퍼블릭 섹터나 비영리 조직에 의한 사회 문제 해결에 계속 관심이 있었고, 경력도 그런 것으로 쌓아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에 시 의회 의원 밑에서 인턴 활동을 했던 것도 그 배경에 퍼블릭 섹터에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의원 인턴 경험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리크루트 출신으로 선거에서는 반드시 당선. 정책 입안 및 홍보에서는 높은 비즈니스 스킬을 살리고 다른 의원을 압도. 시와 현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활동하고 그 아래에 모인 인턴생도 대단한 사람들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소셜 비즈니스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 점점 비즈니스×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을 보자. 대학 4년간 개발도상국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도 "그래, 케냐에 가자."

세 번째 이유는 「농업 유통을 개혁하고 빈곤 농가를 뒷받침한다는 Alphajiri의 사업에 강한 흥미를 품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주 동아리는 뭐 하는 곳이야?" "그래서, 먹고 마시기만 하는 곳이야?(술 많이 마시는 곳이야?)" 등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물론 멤버 모두가 일본주를 좋아해서, 자주 모여서 마시는 동아리입니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이 동아리는 "매력 있는 일본주를 젊은 세대가 이끌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국내의 일본주 총 소비량, 양조장 수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이 있고, 진화도 하고 있는 일본주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설립된 동아리입니다.

동아리 선배에게서 이 뜨거운 마음을 전달받은 저는 타고난 영웅심에 불이 붙어 "동아리의 대표가 되어 일본주 업계를 고조시키는 힘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해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 축제에서 일본주를 팔거나, 양조장에서 제조 체험 투어를 하거나, 마을의 일본주 행사에 참석하거나, 일본주 콜라보레이션을 구상하거나, 젊은이와 일본주를 연결하는 활동을 하면서 일본주 제조 공정이나 유통 구조, 마케팅의 실제 등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일본주는 농업이나 자연환경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생산자가 안정되어 생산·판매하고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의 어려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력에서 농업이나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Alphajiri의 인턴생 모집 광고가 갑자기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모두 아시겠지만 거기서 저는 이렇게 결심했던 겁니다. "그래, 케냐에 가자."

…라는 것으로 계획적인 듯하면서 사실은 무계획적인 경위로 Alphajiri의 인턴생이 됐다는 이야기로, 이번 포스팅은 끝내겠습니다. 다음에는 현지에서의 인턴 활동과 생활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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