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会起業家ブログ
Jul.
31

취업 활동은 연애와 같다. 100명에게 인기 있는 것보다 한명에게 깊게 사랑 받는 것이 좋다(From Tika 4/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3)~

전회에 이어서 Tika가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취업 활동은 연애와 같다. 100명에게 인기 있는 것보다 한명에게 깊게 사랑 받는 것이 좋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에게 있어서 알파지리가 그 한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CEO 야쿠시가와 씨와 CFO 니시다 씨, 그리고 일본에 귀국해서도 매일같이 전화를 해주거나 메시지를 보내주는 케냐인 스태프와 함께 활동한 것. 무엇보다 "알파지리"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비전과 사업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서 함께 했던 시간은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최종회이기 때문에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면서 배운 2가지에 대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배움① 소셜 비즈니스란

「소셜 비즈니스, 소셜 비즈니스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사업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 어떤 비즈니스더라도 니즈가 있어야 성립해.」

이런 말을 케냐에 오기 전에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삼촌들로부터 몇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다소의 위화감을 느꼈지만, 소셜 비즈니스 경험이 없었던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체감한 소셜 비즈니스의 큰 특징은 2개입니다.

(1)비즈니스의 목적이 "사회 문제 해결"이다

이익을 낳는 것 아니라 환경·빈곤·교육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소셜 비즈니스입니다.

그래서 알파지리를 포함한 소셜 비즈니스 사업은 "누구의" "무엇을"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가"가 매우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 "누구"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저기 살고 있는 저 가족" "그 일을 하고 있는 〇〇 씨"처럼 상대의 얼굴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느꼈습니다.

(2)사업의 성공은 "소셜 임팩트"로 정해진다

비즈니스의 성공은 매출과 이익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소셜 비즈니스에서는 해결하고 싶은 과제에 대한 영향의 크기로 판단합니다.

소셜 비즈니스도 비즈니스인 이상 최소한의 이익을 내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최종결정권도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사람의 목소리를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얼마나 매출을 올리더라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사업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활동을 통해서 소셜 비즈니스는 지속가능성의 측면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립적 발전과 고용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제가 목표로 하는 국제 개발 중 하나라고 체감했습니다.

배움② 숫자는 때로 말보다 웅변이다

완전 문과계라서 숫자에 취약한 제가 숫자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된 것도 큰 배움 중 하나입니다.

알파지리는 여러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진척 상황을 정량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역시 지역에 따라 수치가 좋은 곳과 좋지 않은 지역이 있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서 저의 활동 보고를 썼는데, 문제 제기의 지표가 된 것이 바로 "숫자"입니다.

표면적으로 나오는 「숫자」는 사람들의 의사나 행동이 반영된 결과이며, 역시 수치가 좋은 곳을 찾아 인터뷰를 하거나 일 하는 모습을 조사하면 반드시 수치가 좋은 비결이 숨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포인트는 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야말로 수수께끼를 풀어낸 기분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런 노력이 나중에 이런 식으로 이어지네"와 같은 발견의 기쁨이야말로 현장에서 일하는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부감적으로 파악하고 숫자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즐거움이나, 현장 상황을 언어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던 것은 대단히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언제나 기운을 준 아이들

지금부터, 여기부터.

케냐에서의 활동 경험, 만난 사람들, 눈으로 본 정경 등 모든 것이 지금의 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온 힘을 기울여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야쿠시가와 씨와 니시다 씨 아래에서 활동한 것은 저에게 굉장히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얻을 것이 더 많았기 때문에 정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갈 수 있다면 또 알파지리에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멋진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파지리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하기 나름.
앞으로도 사회 문제 해결을 저의 인생의 목표로 삼아 정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인턴을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 알파지리를 추천합니다!

제가 반년 간 있으면서 생각한 것이지만, 장기로 가는 편이 확실하게 자신의 활동의 폭이 넓어지고 배움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꼭 장기 일정으로 가보세요!

총 4회에 걸친 제 블로그를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상테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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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
케냐의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From Charles 3/4)~알파 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8)~
알파지리가 케냐 농촌을 바꾼다(From Charles 4/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9)~
왜 알파지리인가?(From Tika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0)~
알파지리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From Tika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1)~
인턴생인 내가 이룬 3가지(From Tika 3/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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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7

인턴생인 내가 이룬 3가지(From Tika 3/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2)~

이전 블로그에 이어서 Tika가 쓰고 있습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서 약 반년간의 인턴생활에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던 처음과 비교하면 조금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턴생활을 했던 미고리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본 아름다운 일몰은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사람들이, 앞으로 다른 길로 나아가는 제 등을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감회가 깊었습니다.

돌아가는 날 버스 안에서 본 석양

알파지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한 제가 실제로 알파지리에서 반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하고 무엇을 이루었는지, 일개 인턴생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미미하지만 3가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① 차마 구조 만들기

케냐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있고, 읽고 쓰기를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농민들이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 의문을 품기 시작한 무렵, 알파지리는 "차마를 통한 농촌 개발"를 새로운 지침으로 삼고 힘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차마"란, 일본에서 말하는 조합 같은 것으로, 알파지리의 계약 농가가 각 지역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진척 상황이나 향후의 방침, 또는 개인 문제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알파 차마"는 소규모 농가의 플랫폼

차마가 잘 실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수확량뿐만 아니라 농민분들의 일에 대한 의식 향상 등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이 알파지리와 농가의 교량이 되어주는 차마는 큰 가능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의견을 내고 알파지리의 계약 농가로서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는 생각에서, 차마 활동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지각인가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고, 그 미묘한 의식의 차이가 큰 차이를 낳습니다. 그래서 "1분이라도 지각하면 벌금을 낸다"는 엄격한 규칙을 전 지역에 적용하는 등, 심플하고 알기 쉬운 항목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 차마에 관련된 사업이나 경험 등은 5분 전 행동이 일상이 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지만, 현지 사람의 사고 방식에 맞추어 설명 방법이나 시스템 구축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실감했습니다.

② 신규 농가 채용 방침

사업을 전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규 농가의 채용"입니다.

알파지리의 사업은 농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만, 농가라고 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가의 수확량이 알파지리의 이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얼마나 성실하고 알파지리의 이념과 방침에 공감하는 농가를 채용하는가"라는 것이 사업 성공을 위한 열쇠가 됩니다.

거기에서 이번 시즌의 신규 채용 성공을 위해서, 채용을 담당하는 FO를 위해 다양한 새로운 방침을 작성했습니다. FO란 지역담당자를 줄여 말하는 것인데, 담당 지역에 속하는 많은 농가를 관리하기 위해서 일하는 알파지리의 사원입니다.

결과적으로, 채용을 시작하기 전부터 FO들에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힘내야지"라는 의식 향상이 생긴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느낍니다.

③ 쿠리아 전체 회의 기획·실시, 후속 조치

아까 어떻게 신규 채용이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마치 채용이 성공하는 듯한 절차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 곳, 케냐입니다.(웃음)

케냐인뿐 아니라 우리도 설 연휴를 반납하고 필사적으로 매일 일하고 있었는데요, "방문 시·전날 리마인드 때에는 설명회에 온다고 하더니, 농가의 사람들이 설명회에 오지 않는다"라는 FO들의 피폐한 외침이 있었습니다.

알파지리는 미고리 군내 있는 쿠리아나 오그웨디, 만야타 등과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쿠리아 지역의 FO가 고전하고 있어서 이유를 물어봐도 "이벤트 시기니까", "크리스마스 전이니까 교회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등, 누구도 왜 그렇게 됐는지 근본 원인을 알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성실한 농가를 가려내기 위해서 "3번의 설명회 중 3번 모두 출석하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는다"라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이대로는 농가가 설명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채용되지 않는다 → 목표 농가 수를 달성하지 못한다 → 수확량이 낮아진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게 됩니다. 거기서 채용이 더디게 되고 있는 쿠리아 지역의 FO을 모아서 다음과 같이 긴급 회의를 했습니다.

당일에는 조언을 받기 위해 쿠리아 지역의 FO뿐 아니라 CEO인 토모코 씨나 채용이 순조로운 지역 FO에게도 쿠리아에 오도록 해서, 전원이 농가를 채용하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원인을 찾아내기로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알게 된 것은 "쿠리아에서는 FO와 농가와의 신뢰 관계가 쌓여있지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명회 참석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사전에 결석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채용 진척이 좋은 FO는 설명회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시간이나 설명 방법을 궁리하는 등 관계 형성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농가를 설명회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이번에 콩 설명회를 하기 때문에 왔으면 좋겠어요. 한 번이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채용할 수 없거든요. 알파지리는 까다로우니까 시간은 꼭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가족은 잘 지내나요? 지난 시즌에는 무엇을 키우고 있었나요? 콩을 다루는 알파지리라는 좋은 회사가 있는데..."

이 두 가지 말을 들었을때, 어느 쪽이 농가가 설명회에 대해 흥미를 가질까요?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밀한 기술을 다른 FO간에 공유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미팅 실시 후, 실제로 쿠리아의 FO들은 설명회에 사람을 부를 때에 1명에게 들이는 시간을 늘려서 설명회 참가율이 크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처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 제기 → 분석 → 시책 제안 → 실시 → 후속 처리'를 담당했었습니다.

때로는 생각의 차이로 케냐인 스태프와 충돌하거나 언어 문제로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즐겁다고 생각하는 충실한 나날이었습니다.

알파지리 사원과 농가 전원이 하나가 되어 분투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운, 이런 회사에서 활동을 한 것은 제 인생의 재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중요한 일을 인턴생에게 맡겨주신 CEO 토모코 씨, CFO 니시다 씨의 환경 조성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이러한 대처를 통해서 배운 것을 마지막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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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From Charles 3/4)~알파 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8)~
알파지리가 케냐 농촌을 바꾼다(From Charles 4/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9)~
왜 알파지리인가?(From Tika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0)~
알파지리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From Tika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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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8

알파지리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From Tika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1)~

전회에 이어서 계속 Tika가 보냅니다.

"왜 Alphajiri(알파지리)가 여기서 사업을 할 필요가 있는가?"

현장을 모르는 분이 보면 누구나 한 번은 품는 의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알파지리의 이념에 공감해서 케냐에 오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한 경험도 없고 농업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초보자라서 많은 기대와 불안을 가슴에 품고 인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이번에는 "알파지리가 케냐의 벽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에 대해서, 일개 인턴생에 불과한 제가 활동을 통해서 생각한 것을 두 가지 정도 쓰려고 합니다.

자연과의 싸움. "농업"이기 때문에

"농업으로 돈을 벌기란 직장인보다 어렵다"

농가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든 감상입니다.

주휴 2일? 복리 후생? 월말에 입금되는 월급?

그런 것은 농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고리에 살다보면, 문득 옛날로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둘러보면 온통 녹색으로 가득 찬 밭에는 소와 밭을 가는 부자의 모습이 눈에 비치고, 또 집안을 들여다 보면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는 케냐인 여성들, 마당에는 강에서 길어 온 물로 목욕을 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부로 느낀 것이지만 이곳은 80% 이상이 농업 종사자이며, 이러한 옛날부터 이어져 온 생활을 하면서 아침 일찍부터 밭을 찾아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처럼 트랙터나 콤바인과 같은 농기계는 없기 때문에 모두 수작업으로 일을 합니다. 즉, 씨앗을 일일이 손으로 심고, 잡초 뽑기나 물 주기 등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소중히 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도 경험해보았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이 바로 자연재해입니다. 가뭄, 동물 피해, 침식 등 자연에 의한 피해를 세어보자면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농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제1차 산업을 농가들은 해내고 있습니다. 정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그러나 수확량이 낮은 농가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연재해만이 원인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를, 진심으로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던 것"

이것이 수 세기 동안 농업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만 하며 성장하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지리는 미고리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젓가락을 잡는 방법은 부모에게 배우고, 몰랐던 문제는 선생님이 푸는 방법을 알려주듯이, 농업에서도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경작 방법이나 자연재해에 대한 대책 등 기초적인 것들을 미고리의 농가들은 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못 하고 있다기보다는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책임은 아닙니다.

"무지는 죄다. 지식은 공허하다. 지혜를 갖는 자가 영웅이다."

라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이 있는데, 농가들 개개인이 영웅이 될 수 있도록 알파지리가 농가와 함께 달리고, 그들의 생활이 향상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현금 수입이라는 벽

"가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저소득자", "빈곤"이라고 해도 그 모양새는 여러 가지입니다. 저도 케냐에 오기 전까지는 쓰레기 산에서 사는 가족이나 스트리트 칠드런 등, 이른바 "눈에 보이는 빈곤"이 개발도상국의 빈곤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러나 미고리에서는 집이 없거나 기아 직전의 사람들은 만난 적이 없고, "우리는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는 말을 어떤 케냐인 직원에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어떻게든 작은 밭에서 자급자족하고 매일의 식량은 최소한도로 확보하지만, 현금 수입이 없어서 아이들의 학비조차 낼 수 없어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중입니다. 미고리의 농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빈곤자"였습니다.

미고리의 많은 농가들에게 있어서 농업의 주 목적은 가정 내 소비이며, 수확한 작물을 팔아서 현금 수입을 얻는 등의 지식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지리는 그 누구도 정립하지 못한 "농업의 공급망 개혁"을 내세우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고리에는 작물의 씨앗을 배포하는 NGO나 회사, 수확 후 작물을 헐값에 사들이는 브로커 등이 존재하지만 종자의 선별부터 적정한 가격으로 매입하는 것까지를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조직은 알파지리뿐입니다.

"함께 경작을 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고 수확한 것은 모두 현금으로 매입한다"

저는 이것이 알파지리 최대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현금으로 아이들의 진학률이 높아지면, 농촌 개발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현금 수입"의 입구를 만드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업이 그들의 생활을 바꿀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CEO인 야쿠시가와 씨는 "농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이는 알파지리의 멤버 전원이 농촌을 바꾸기 위해서 농가와 진지하게 마주할 각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2014년에 유엔 본부에서 엠마 왓슨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To ask yourself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자신에게 물어 보세요. 나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라는 말에 대답을 해보자면, 케냐 농촌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알파지리이며, 지금 이때입니다.

이번에는 인턴생인 제가 느낀 "알파지리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에 대해서 적어보았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지만,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인턴생을 포함해 알파지리의 멤버 전원이 알파지리가 사회를 바꾼다고 확신하고, 매일매일 활동하고 있는 의의가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활동을 통한 배움·발견"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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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From Charles 3/4)~알파 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8)~
알파지리가 케냐 농촌을 바꾼다(From Charles 4/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9)~
왜 알파지리인가?(From Tika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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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8

왜 알파지리인가?(From Tika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0)~

푸른 하늘이 펼쳐진 자연이 가득한 미고리의 땅에 매료되고 벌써 4달이 지났습니다.
현재 Alphajiri(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카와시마 카호입니다.

"Habari yako?" "Mzuri sana"라는 스와힐리어 인사로 하루가 시작되고, 여기에서는 "Tika"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케냐인과 같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첫 투고이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던 일본의 대학생이 왜 Alphajiri(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심했는지, 그동안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을까 합니다.

국제 협력과의 만남

"국제 협력×교육으로 개발 도상국에 기여한다" 이것이 제가 유소년기부터 갖고 있던 목표였습니다.

생각이나 인격은 유소년기의 교육 환경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우도 그래서, 철이 들었을 때는 집에 외국인이 자주 놀러 오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국적·인종·종교에 관계 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던 가운데,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이 도상국에서 일하러 왔다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일명, 기능 실습생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실제로 그들이 일본에 오기 전의 상황을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인 캄보디아에 혼자 여행을 가보고 현지의 학교와 고아원을 찾아가 보던 중에 교육은 세계를 바꿀 가능성을 지녔다고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일에 종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때마침 말랄라 유사프자이 씨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해이기도 해서 교육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방문했을 때의 고아원 아이들(캄보디아)

교육에서 소셜 비즈니스로?

"장래에 하고 싶은 것은 없다. 하고 싶은게 있어도 할 수 없다."

이는 교육에서 소셜비즈니스로 방향을 바꾸자고 생각한 계기가 된 말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교육에 관심이 있던 저는 국제 개발을 배울 수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2년 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반년간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적은 말을 또래 인도네시아인 친구에게서 자주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한, 저보다 훨씬 우수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확실히 살고 있는 시골마을을 둘러보면 괜찮은 기업도 없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훨씬 살기 좋아진 지금이지만 인도네시아에는 지방 격차, 정보격차가 확실히 존재했었습니다.

"교육으로 세계를 바꾼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저였지만, 고용환경을 정비하지 않으면 교육을 받은 젊은이의 가능성을 살릴 수 없는 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태어난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누구나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라는 것을 새로운 인생의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 수단으로서 소셜 비즈니스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나면 각각의 궤적이 있고,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현지인과 함께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현장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 했습니다.

활동하던 인도네시아의 초등학교에서

왜 "Alphajrii(알파지리)"인가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한 후, 다음 단계의 장소로 소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회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밖에 없다고 느낀 것이 바로 알파지리였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심플한데,

· 이념과 사업 내용이 일치하고 있다.
· 스타트업이고, 직원은 일본인보다 케냐인이 더 많다.
· 면접 때 CFO인 니시다 씨와 이야기 했을 때 경영진의 마음에 공감했다.

라는 세가지 이유였습니다.

다른 회사도 생각을 해봤지만, 니시다 씨와 이야기했던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알파지리의 대응 방법이나 멤버 전원이 농가와 친밀하게 마주보는 자세, 또 인턴생이더라도 기존의 방식이나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책을 제안·실행할 수 있는 환경에 이끌려서, 제 인생의 한 페이지에 아프리카를 새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 확신하고 있으며, 확실히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색깔을 물들여 가며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좀 길어져 버렸습니다만, 이것이 지금 제가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다음은 "Alphajiri(알파지리)가 미고리에서 사는 의미"를 주제로 미개의 땅 아프리카에 와서 농업 경험이 전혀 없던 제가 느낀 알파지리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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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알파지리가 케냐 농촌을 바꾼다(From Charles 4/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9)~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에 걸쳐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알파 지리)에서 인턴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입니다. 케냐에서의 인턴 기록을 여러 차례 보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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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사는 이쪽
제1탄 ▶"그래, 케냐에 가자."알파 지리 인턴 학생 일기
제2탄 ▶사파리가 펼쳐져 있는, 농업이 발달한 IT신흥국!?~케냐의 생활~
제3탄 ▶케냐의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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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4편인 이번 편은 드디어 최종회입니다.

제 1편의 기사 속에 있었던
"내가 알파지리 인턴에 지원한 이유(목적) 세가지"에 대해서, 실제로 목적을 이루었는지 하나씩 검증하고 싶습니다.

① 자신의 경력 방향을 정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

(회상)
쌓았습니다. 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습니다만, 너무 많이 쌓아서 흔들흔들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깊은 경험을 했습니다.

가난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난 후 보이기 시작한 내가 가야 할 길.

저의 앞으로의 경력의 방향성은 이렇게 추상화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세계에 가로놓인 기회의 격차를 줄인다"

빈곤 문제에 대해서, 인턴 중에 이런 것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본 알파지리가 있는 미고리 마을은 일본인에게는 아무래도 "빈곤한 생활"이라고 보이는 광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활동하고 있다 보면, 현지인으로부터

"용돈 주세요!(순진한 아이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점심 값으로 200실링만 주라"

"오늘부터 매달 1000실링 주세요!"

"콩의 씨앗을 대신 사주세요!"

처럼 의외로 진지하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너무 복잡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현지에 와도 괜찮았던 걸까 고민도 했습니다.

- 우연히 선진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해온 인간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

- 그래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돈을 달라!고 하면 역으로 주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지 않을까?

- 게다가 그렇게 돈을 달라!라고 말하는 케냐인들은 "풍족"한 나를 보며 자신의 "가난"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건 즉, 그들 자신의 자존심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오지 않았으면 그들의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 없는 건가?

- 그런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는 것이 가능할까?

『애당초 "가난"이라는 건 어떤 것일까.』
여기 사람들은 수입이 낮고, 질병이나 날씨와 같은 위험에 약하고. 인프라가 부족하다.
하지만 일본보다 느긋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많다. 밤은 별이 가득한 하늘이 보이고, 튼튼한 볼과 골대가 없어도 모두 축구를 즐기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가난"한 걸까?

그리고 저는 빈곤과 밀접하게 관련된 격차 문제야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넉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있는 『기회의 격차』.

그것은 원조만으로는 좁힐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빈곤 문제나 기타 사회 문제를 외부에서 무상으로 자금이나 물자를 제공하거나, 해결책을 대신 실행하는 대증요법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과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나 지역이 자립적으로 해결에 몰두할 수 있도록, 대등한 입장에서 함께 행동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② 비즈니스에 의한 사회문제의 해결 구조를 실제로 보고 검증하고 싶다

(회상)
1개월이라는 기간으로는 솔직히 충분한 검증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셜 비즈니스의 실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역시 앞으로도 소셜 비즈니스에 관여하고 싶다고 느껴졌습니다.
사회 문제, 특히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조직은 다양하죠.(정치인, 관료, 공무원, NPO · NGO, 개발 컨설턴트, 봉사 활동, 기업의 CSR...)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나름대로 비교해보았는데,
소셜 비즈니스의 장점은 역시
"사회적 이익의 최대화를 목표로 스스로 수익을 내고 사업을 돌린다"
"종래의 비즈니스에 못지않은 속도감을 전개할 수 있다"
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경제학에서는 기업이 이윤 극대화의 원칙을 따른다고 가정하고 모델의 구축이나 분석을 실시함으로써 기업 행동의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그리고 알파지리를 비롯한 보더리스 재팬의 사회 기업가들이 임하고 있는 사회 문제가 태어난 배경을 "시장의 실패"나 "정부의 실패"의 원인을 인식하는 형대로 설명합니다.
한편, 소셜 비즈니스는 이윤의 극대화보다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 원칙을 따르고 사업을 실시합니다. 물론 소셜 비즈니스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성공하면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주체로서 경제 문제에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인턴생이었을 때는 마침 알파지리가 사업 전략을 크게 바꾸는 과도기였습니다.
· 일본인과 케냐인의 언어와 문화의 차이
·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해서 시간과 수고가 드는 농업 지도와 조직화
· 계약 농가들과의 보통 수단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매입 교섭
· 취업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케냐인 직원 채용과 육성
…과제가 산더미처럼 있는 가운데 얼마나 빨리 케냐의 농촌에 풍요로운 생활을 가져올 수 있을지-
향후 알파지리의 발전이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③ 농업 유통을 개혁하고 빈곤 농가를 뒷받침한다는 알파지리의 사업에 강한 흥미를 품고 배우고 싶다

(회상)
사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짧은 기간 동안에는 할 수 없었지만 알파지리가 설립된 경위, 경영 전략, 활동 현장, 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가서 보고 이해한 것이 많았습니다.

● 알파지리가 설립된 경위와 일하는 사람들

대표 이사인 야쿠시가와 씨가 미고리에 청년 해외 협력 대원으로 부임했을 때, 알파지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콩 생산·유통의 보급을 담당했던 야쿠시가와 씨는 프로젝트 기간이 단 몇 년으로 끝나버리는 국제 협력이 아니라 현장에 남아서 침착하게 빈곤 문제에 밀접한 사업을 선정, 케냐의 농촌 개혁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2년 7개월 정도가 지나도, 야쿠시가와 씨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경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해보면 솔직하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 주셨고, 그 활동력과 열정이 매력적인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부사장 니시다 씨. 온종일 일만 생각하지 않나요?라고 생각할 정도 매니지먼트 층의 귀감 같은 분인데, 가끔 아이처럼 순수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즐거운 듯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졸업생으로 입사한 타카모리 씨, 그리고 케냐인 직원들도 어려운 일에도 생기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소셜 비즈니스에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즐기며 일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 현장의 목소리로부터
제가 홈스테이를 한 알파지리의 계약 농가는 자신들의 수입이 안정돼서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관개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는 빗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농업. 농업 수입이 충분하지 않으면 거리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하거나, 단기로 벽돌집의 건설 작업원을 하거나, 가축과 목재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케냐 농가. 그런 와중에 조금씩 알파지리에 의해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농작물의 판로를 만드는 효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케냐에서의 한 달이 일깨운 것.

알파지리에서의 경험은 이들 이외에도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상생활을 예로 들면 현지에서 체류한 아파트먼트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청소기, 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이 없는 상태에서 생활하며, 자주 단수나 정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농가의 집에서는 전기도 수도도 연결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농사를 짓는데도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가 없기 때문에 사람의 힘과 가축만으로 해야 했습니다. 목욕물도 모닥불로 끓여서 하거나 강에서 몸을 씻었습니다.

생활 인프라가 정비되어 있지 않는 것에서 "빈곤"의 원인 중 하나를 느끼기도 했고, 돈이나 물건 등의 빈곤이 아니라 일본에 사는 우리와의 "시간"의 큰 격차도 실감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
"시간이 없어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저도 이런 식으로 변명하기 쉬운 편이지만, 농촌의 케냐인과 교류하고, 또 자신의 빨래를 서투르게 손 빨래(1시간 정도 걸리거나)를 하던 가운데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나에겐 시간이 많구나..."라고 통감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시간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케냐인보다 많이 누리고 있었구나,라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마주 본다.
일도, 공부도, 교우도, 연애도, 취미도.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행복으로도 이어지고, 시간이라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케냐 사람들에 대한 경의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알파지리의 여러분, 저를 인턴으로 채용해 주시고 귀중한 경영 자원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험을 양식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앞으로 알파지리의 인턴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러분.

사회문제의 해결에 임하고 싶다, 소셜 비즈니스를 현장에서 배우고 싶다는 뜻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알파지리의 사업의 이 부분을 개선·발전시키기 위해서 ○○하고 싶습니다!"라고 제안을 하면, 인턴이라도 의견을 제대로 들어주는 개방적이고 좋은 곳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분이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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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5

케냐의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From Charles 3/4)~알파 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8)~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의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알파지리)에서
인턴생으로서 활동했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입니다!
케냐에서의 인턴 기록을 여러 차례 보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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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사는 이쪽

제1탄 ▶"그래, 케냐에 가자." 알파 지리 인턴생 일기
제2탄 ▶사파리가 펼쳐져 있는, 농업이 발달한 IT신흥국!?~케냐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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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3편인 이번 편에서는 현지에서 겪었던 인턴 활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짧지만 굵었던, 순식간에 지나간 1개월이었습니다.

<케냐의 농촌에서 일하면 이렇게 된다>

① 혼자서는 들 수 없는 콩 자루

알파지리에서는 파종기에 씨앗이나 비료를 대출의 형태로 빌려주고, 수확기에 콩을 매입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자사 창고에서 씨앗을 각 지역의 창고로 옮겨서 농가에게 배포하고, 반대로 각 창고에서 수확된 콩을 자사 창고로 실어 옵니다. 무거운 것은 하나에 50kg에서 60kg 정도가 되는 자루를 몇 자루나 옮겨야 합니다. 그러나 지게차도 크레인 차도 없어서 모두 인력으로 운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트럭의 적재·적하, 계량 작업, 창고 정리 등을,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근육질의 Steve 군과 함께 땀을 흘리며 해 냈습니다.

혼자서는 들어 올리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에 올리는 것을 도움받아 겨우 실어 나릅니다(매우 힘들다).
인력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실제로 일을 해보고 나서, 개발도상국에 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 돌아와서는 매일 근력을 단련하고 있습니다.(웃음)

② 도로 상황에 좌우된다

어느 날, 사들인 콩을 트럭에 가득 싣고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던 도중, 그 무게 때문에 비포장도로에서 차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전체의 4분의 1자루를 내려놓고 겨우 언덕을 올랐지만, 내려놓은 자루를 둘러메고 언덕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근처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함께 자루를 날라주었습니다. 케냐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도 매우 힘듭니다. 도로가 엉망이 되고, 비가 그칠 때까지는 오토바이를 탈 수 없어서 비를 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③ 하나부터 가르쳐야 한다

알파지리에서는 대출로 씨앗을 빌려준 뒤, 콩을 회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원과 각 지역의 담당자가 각 농가의 밭을 돌며 경작의 진척을 확인하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적절한 농법을 지도합니다.

농법의 지도 내용은 주로 씨앗을 두 알씩 같은 간격에 늘어놓아 이랑에 심고, 부지런히 제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건 그것뿐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농가들은 밭에 씨를 아무렇게나 흩뿌리는 스타일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씨앗을 뿌릴 때에는 편하지만, 모종을 솎아내는 것이나 제초에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명백합니다.

씨앗을 심는 방법을 포함해서 근대적인 농법을 지도하는 것이, 농업 생산성이 낮은 저개발의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케냐와 아프리카의 상황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④ 기계화가 진행되지 않은 농업

농가의 아침은 매우 이릅니다.

5시, 6시에는 밭을 가래로 갈 거나 씨를 심거나 제초하거나 손질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태양이 쨍쨍 내리쬐어 덥기 때문에 사람의 힘과 소, 당나귀을 이용해 농사를 할 수밖에 없는 농가들에게는 체력적으로 손실이 많습니다. 가족 모두가 나서서 해야, 며칠에서 1주일 정도에 걸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밭의 파종 등을 마칠 수 있습니다.

알파지리도 자사 창고 옆에 있는 시범 농장에서 콩과 마늘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비료 등을 바꾸고 복수의 농법을 동시 병행해서 시험해 보고, 농업 지도를 좀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농학을 배운 경험이 있는 Paul이라는 사원이 리더로서 연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고 매우 부지런한 우수한 리더입니다. 저도 마늘을 심어놓은 이랑의 제초 작업을 해 봤는데 시작한 지 15분 만에 너는 수행이 부족하다고 지적을 받아 일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웃음) 그리고는 하루 종일 밭 주변에서 닭이 헤매어 들어와 밭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울타리의 틈새를 돌로 막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일입니다(웃음)

⑤ 자동화되지 않은 콩 선별 작업

또 사들인 콩을 고품질로 가공 업체에 판매하기 위해서 자사 창고에서 조약돌이나 풀, 질이 나쁜 콩을 골라내고 자루를 다시 채웁니다. 주로 여성분들이 선별 작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자동으로 선별해 주는 기계는 없습니다. 고품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품질 수준이 높은 비즈니스 환경에서 자란 일본인이 창업한 알파지리의 강점 중 하나입니다.

일본에 있는 것과 같은 고도의 인프라가 없고, 생산 활동에서 기계 등의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생산성이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꾸준히 사업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기계를 정비하고 인재를 육성하면 생산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적으로 한 파이낸스 조사>

지금부터는 개인적으로 벌였던 활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알파지리는 계약 농가에게 콩의 씨앗, 비료를 담보 대출의 형태로 제공하고, 그 비용을 수확 후에 농가에서 콩이나 현금의 형태로 회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 시기가 지나도 담보 대출의 상환이 완료되지 않으신 분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도 시야에 넣는 알파지리에 있어서, 농가의 재정 사정을 파악하고 대출 운용 시책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거기에서 개발 경제학을 배웠으며 개발도상국의 농촌 금융 사정에 흥미가 있었던 제가 실제로 농가를 찾아가 청취 조사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개발 경제학 책을 읽고 개발도상국의 농촌에서는 "마을 금융협동조합(ROSCAs)"이라는 비공식적인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쉽게 설명하자면, 평소 친분 있는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저축의 구조는 그룹마다 차이가 있어서 재미있는데 2가지 예를 들어보면

· 5인 그룹에서 매달 한 명이 다른 4명에게서 1,000케냐 실링 씩 총 4,000실링을 받고 이를 돌아가면서 반복한다

· 1년마다 결성하는 34가족 그룹으로, 각 가정이 정기적으로 저금을 한다. 시작부터 1년 후에 각자 전액을 돈을 빼내고 그룹은 해산한다. 저금 기간 동안에는 이자율 10%로 그룹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라는 ROSCAs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러한 ROSCAs를 실제로 조사하거나, 농가의 수입과 자산의 분석을 통해 농촌 경제를 이해함으로써 알파지리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무언가 의견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생략하지만, 조사 결과를 통해 저는 아래와 같은 가설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 알파지리가 계약 농가의 수입과 자산을 고려한 대출 제공을 하지 못하고, 변제기일이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을 가능성

· 농가 측이 대출을 받을 때에 생산 계획 및 상환 견적을 잘못 알았거나, 담보 대출이 아니라 무상으로 제공되었다고 오인했거나, 변제가 늦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해주리라 기대한 경우 등

· 가뭄으로 흉작인 경우에도 상환 기일을 지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번 분기 Ndiwa 지역의 경우).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시책을 간단하게 리포트로 정리했는데 「계약 농가에 대해 파이낸셜 매니지먼트의 지도를 실시한다」라고 하는 시책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케냐에 가기 전에 와다 노부아키 씨와 나카타 토요카즈 씨가 집필한 『도상국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국제 협력 메타퍼실리테이션 수법』(미즈노와 출판, 2010년)을 읽고 자주적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까. 재배 전의 밭 손질부터 순서대로 작업을 열거하고 그 각각의 작업에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점검해보면 여기까지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작물이 팔리면서 매출이 손에 들어온다. 그리고 여기서 필요한 비용을 뺀다. 그러면 수중에 남은 돈은 모두 소비로 돌릴 수 있는 돈으로 여긴다. 손에 남는 돈에서 얼마를 생활비로 쓸 것인가를 묻자 모두 하나같이 의아한 얼굴을 한다. 이 돈은 다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얼굴에 쓰여있다. 즉, 경영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생활에 들어가는 돈을 급여로 설정하고 비용 속에 넣지 않으면 사업으로서의 이윤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좀처럼 모른다.

또, 다음 농번기를 위한 시작 자금을 확보해놓는다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빚을 지다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진짜 이익은 얼마인가, 코스트를 정확히 알지 않는 한은 알 수 없다. …(비용의 이해를) 정성껏 풀어서 설명하고 끈기있게 훈련시켜주는 외부 기관은 일단 없으므로, 대부분은 들어온 돈을 방침도 없이 전부 사용해버리고, 어느샌가 땅도 팔게 되는 것이다」(403쪽)

이 이야기는 케냐에서도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실감했습니다.

시장 경제에 편입되면서 어느새 "농부"가 된 농가가 파이낸셜 매니지먼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알파지리와의 대출 계약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비공식적인 금융을 통해서, 저축이나 대출의 감각에는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경영 관리에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턴이 끝나고 몇 개월이 경과했지만, 알파지리에서도 ROSCAs를 통해서 파이낸셜 매니지먼트의 지도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로서 사회문제에 대면하고 있는 알파지리이기 때문에 지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므로, 위에서 발췌한 "정성껏 풀어서 설명하고 끈기 있게 훈련하는 외부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인턴 활동을 통해 사회사업에 대해서 생각한 일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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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5

사파리가 펼쳐져 있는, 농업이 발달한 IT신흥국!?(From Chales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7)~

Mambo? Poa!(How are you?Cool!)

올해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입니다. 그러고 보니, 케냐의 농촌에서 1개월 동안 일하면서 5kg의 다이어트에 성공했지만,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도로 살이 쪘습니다.

이전 블로그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의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에 사는 여러분은 좀처럼 상상도 못할, 케냐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케냐에서 일을 하거나, 놀러 가거나, 살거나 할 때 참고하세요!

~인구~

케냐에는 42개 부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족이라고 하면, 야마토 민족, 아이누, 류큐, 조선계열, 중국계...그리고 EXILE TRIBE정도? 일본인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네요.(웃음) 일본에서도 유명한 부족은 역시 마사이족입니다. 케냐의 국기에도 마사이 족의 방패와 창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사이족의 인구 비중은 주요 민족 랭킹 톱 10 안에 들지 않습니다. 제일 인구가 많은 것은 키쿠유 족.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는 이 부족 출신입니다. 알파지리의 거점이 있는 마을 미고리에서는 인구 비율 4위를 차지고 하고 있는 오루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언어~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입니다. 스와힐리어는 서 아프리카 지역 공통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공교육을 받은 국민은 모두 영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 거리의 간판, 학교의 교과서 등은 대부분 영어로 되어있으며, 아프리카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영어만 알면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부족에는 각각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케냐 국민은 자신의 부족어, 스와힐리어, 그리고 영어 3개국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다!라고 알려진 일본과는 딴판이네요(웃음).

또 현지인들의 대화에는 같은 부족끼리는 부족어로 다른 부족끼리는 스와힐리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 밖에 못하는 저에게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이 힘들었습니다(웃음).

~의복~

기본적으로는 일본인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면, 케냐 국기 문양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일장기 무늬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볼 수 없죠. 다만 미고리의 농민들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있거나, 그들이 쇼핑에 가는 시내에 헌 옷 가게가 많이 늘어서 있거나 해서 현지인에게 있어서는 새 옷을 손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비록 새 옷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멋쟁이였습니다. 이는 저의 독단과 편견임을 사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웃음) 일본인의 치장은 무난하다고 할까, 차분한 색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케냐인들은 시내에 나갈 때나 집회에 참석할 때 교회에 갈 때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멋을 부렸습니다. 화려한 무늬가 많아서, 산뜻하고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사이족 사람들이 마사이 천을 입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낯익은 붉은 체크무늬의 천도 있고, 노랑, 파랑, 녹색 등 여러 가지 색의 천을 입고 있었습니다. 모두 우아하게 차려 입고 있었으므로, 나도 일본에서 입어서 유행시켜야지!라고 생각해서 선물로 샀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캉가라고 하는 스와힐리어 이름이 붙은 천을 입은 여성도 많았습니다.

~식사~

케냐인의 주식은 우갈리. 옥수수와 카사바, 밀렛(펄 밀렛)등의 가루를 물에 풀어 반죽해서 만듭니다! 인터넷에서 "맛없는 비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입안이 푸석푸석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쌀을 사랑하는 일본인에게는 낯선 음식인 것은 틀림없습니다!(웃음) 케냐인의 우갈리 사랑은 대단해서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잔뜩 쌓여있는 우갈리를 칼로 각자 원하는 만큼 잘라먹었습니다.

우갈리와 함께 고기나 생선, 수쿠마(케일)란 채소를 먹는 것이 케냐 스타일.

이 외에도 얇은 크레이프 같은 빵의 차파티, 다진 고기와 콩을 넣은 껍질을 튀긴 스낵인 사모사, 우유를 섞은 홍차 차이 등... 어라? 알아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모두 인도 요리 아닌가?! 사실 케냐의 식생활에는 인도 등 남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의 영향이 짙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또, 포리지라는 곡류를 끓여서 죽으로 만든 것도 케냐인들은 즐겨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죽보다는 팥죽?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농민 분의 댁에 가면 컵에 가득 담아 주지만 힘내서 절반 정도를 마시는 것이 겨우였습니다(웃음).

~주거~

농민들의 상당수가 목재와 흙벽, 초가지붕이나 함석지붕으로 만든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축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공통된 것은 손님을 불러들일 것 같은 큰 방이 있는 건물이 있는 것, 가축을 숨기는 오두막이나 공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명은 태양열 집열판을 지붕에 설치해서 발전을 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수도도 제대로 뚫려 있지 않아서, 근처에 물을 길어올 수 있는 곳에서 조달. 가스 대신 모닥불로 요리를 만들고, 목욕물을 데웠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밭 속의 노천탕"이었습니다. 가옥의 뒤쪽에 함석으로 삼면을 둘러싼 욕실이 있고, 거기서 통에 모아놓은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 몸을 씻는 것입니다. 홈스테이를 했을 때, 처음에는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밖에서는 벌거벗기 싫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무래도 좋아졌습니다(웃음).

벽돌로 지은 집들도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벽돌을 쌓아올리고 굽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벽돌로 지은 집은 permanent house(뜻:내구성 있는 집)으로 불리며 이를 짓기 위해서 저금하고 있다고, 홈스테이로 머물렀던 집의 주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통~

현지의 공공 교통수단은 마타투라는 승합 버스(일반적으로 도요타의 하이에이스 중고차가 많았습니다)나 툭툭이라고 부르는 오토바이 택시, 도시 간을 이동하는 고속버스가 일반적입니다. 마타투는 좁은 차내에 손님을(가끔 닭도) 가득 태우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립니다! 이곳은 도로가 2차선뿐으로, 앞선 차량을 추월할 때는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 맞은편에서 차가 올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실제로 마타투는 사고가 많은 편으로, 마타투의 차 안에는 사고 주의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는 사정이 좋지 않고, 오토바이로 운전수 뒤에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수도 없이 아파졌습니다. 또 때마침 우기에 인턴 활동을 해서 그런지 집중호우로 도로가 엉망이 된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를 주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장자리의 도랑에 타이어가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처럼 견인차 같은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 자리에서 동석했던 현지인들끼리 힘을 모아서 차를 빼냈습니다.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일본 기업의 제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신차는 없고 중고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길에서 갑자기 소나 닭이 튀어나와서 차로 칠 것 같은 경우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웃음).

~경제~

케냐 경제의 큰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농업과 농업 관련 산업, 관광업입니다. 농업품 수출은 홍차, 커피, 절화가 큰 점유율을 차지합니다. 케냐라고 하면 커피를 떠올리는 것도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이미지지요!

절화는 네덜란드 등 유럽의 시장에 장미 등을 수출하고 있어 국내에 온실이 있는데, 저도 나이로비 근교의 나이바샤 호반에 있는 대규모의 장미 온실을 보고 놀랐습니다.

관광업에서는 사파리의 존재가 큽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진짜 사파리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사파리가 아닙니다. 저도 인턴 수료 후에 3개 사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야생 동물들과 멋진 자연에 둘러싸이면, "아, 지금 엄청나게 아프리카를 느끼고 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 IT의 발달도 두드러지는 케냐. 사실 케냐 전체의 휴대 전화 보급률은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고리의 농가들도 거의 한 집에 한 대씩(폴더형 휴대폰)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케냐의 모바일 업체가 제공하고 있는 모바일 뱅킹 서비스 "M-PESA". SMS 기능을 사용해서 계좌를 만들어 돈을 송금하거나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작은 상점이나 식당에서 결제도 가능합니다. 알파지리가 농민들과 돈거래를 할 때도 M-PESA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에 의해서 은행 이용이 힘든 빈곤층의 사람들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모바일 뱅킹이 보급되지 않고 있는데, 케냐는 이 분야에서는 모바일 선진국에 다가가고 있는 거 아닐까요?!

또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실리콘 사바나"라고도 불리고 있어서, 세계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점점 모여들면서 IT 산업의 점진적인 발전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제 설명을 통해서 케냐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기 쉬워지셨나요? 다음에는 케냐의 생활 상황을 바탕으로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활동에 대해서 보고하고자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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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5

“그래, 케냐에 가자.”(From Charles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6)~

Jambo!Habari yako?(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기분은 어떠세요?")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에 걸쳐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알파 지리)에서 인턴으로서 활동하고 있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라고 합니다. 케냐에서 귀국하고 2개월이 지났습니다. 절찬 케냐 앓이 중입니다. 현지에서 들었던 지역 음악과 레게 음악을 YouTube에서 끊임없이 듣고 있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케냐와 아프리카가 나를 부르고 있는데! 반드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내가 알파지리 인턴에 지원한 세 가지 이유

도대체, 왜 아프리카에서의 소셜 비즈니스 벤처에서 인턴활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경력의 방향을 정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산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떤 느낌이고, 나에게는 그 삶을 다할 각오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라는 것입니다. (장대하네요... (웃음))

저는 어린 시절부터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일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서도 건방지게도 이런 것을 적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개발도상국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구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다양한 일을 해서 세계의 사람들을 내가 가진 힘으로 구하고 싶습니다.」

소심하며 스포츠도 몹시 서툰, 전혀 "힘" 없는 소년이 영웅이 되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했던 거죠.(웃음)

고등학교 중 1년 정도 유학을 하고, 대학은 국제 공공 정책을 배울 수 있는 학부를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마음껏 공부하고 개발도상국에 많이 가서 현장을 보고, 국제기관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국제 협력 관계를 하는 곳에 취직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대학생활 4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은 고향의 시의회 의원 아래에서 인턴십을 했습니다. 다음 해 봄까지 현 의회 의원 선거의 스태프를 맡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에는 도쿠시마에서 개최된 고등학생 여름학교의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1년간 활동. 어라...? 전부 국내 활동이잖아(웃음) 그리고 일본주 동아리라니 대체 뭐야, 술 마시는 동아리?(웃음)

이렇듯이 장래의 경력으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것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봄 방학에 "그래, 케냐에 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즈니스에 의한 사회 과제의 해결의 구조를 실제로 보고 검증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제기관이나 NGO, NPO 등과 같은 퍼블릭 섹터나 비영리 조직에 의한 사회 문제 해결에 계속 관심이 있었고, 경력도 그런 것으로 쌓아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에 시 의회 의원 밑에서 인턴 활동을 했던 것도 그 배경에 퍼블릭 섹터에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의원 인턴 경험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리크루트 출신으로 선거에서는 반드시 당선. 정책 입안 및 홍보에서는 높은 비즈니스 스킬을 살리고 다른 의원을 압도. 시와 현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활동하고 그 아래에 모인 인턴생도 대단한 사람들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소셜 비즈니스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 점점 비즈니스×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을 보자. 대학 4년간 개발도상국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도 "그래, 케냐에 가자."

세 번째 이유는 「농업 유통을 개혁하고 빈곤 농가를 뒷받침한다는 Alphajiri의 사업에 강한 흥미를 품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주 동아리는 뭐 하는 곳이야?" "그래서, 먹고 마시기만 하는 곳이야?(술 많이 마시는 곳이야?)" 등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물론 멤버 모두가 일본주를 좋아해서, 자주 모여서 마시는 동아리입니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이 동아리는 "매력 있는 일본주를 젊은 세대가 이끌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국내의 일본주 총 소비량, 양조장 수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이 있고, 진화도 하고 있는 일본주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설립된 동아리입니다.

동아리 선배에게서 이 뜨거운 마음을 전달받은 저는 타고난 영웅심에 불이 붙어 "동아리의 대표가 되어 일본주 업계를 고조시키는 힘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해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 축제에서 일본주를 팔거나, 양조장에서 제조 체험 투어를 하거나, 마을의 일본주 행사에 참석하거나, 일본주 콜라보레이션을 구상하거나, 젊은이와 일본주를 연결하는 활동을 하면서 일본주 제조 공정이나 유통 구조, 마케팅의 실제 등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일본주는 농업이나 자연환경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생산자가 안정되어 생산·판매하고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의 어려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력에서 농업이나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Alphajiri의 인턴생 모집 광고가 갑자기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모두 아시겠지만 거기서 저는 이렇게 결심했던 겁니다. "그래, 케냐에 가자."

…라는 것으로 계획적인 듯하면서 사실은 무계획적인 경위로 Alphajiri의 인턴생이 됐다는 이야기로, 이번 포스팅은 끝내겠습니다. 다음에는 현지에서의 인턴 활동과 생활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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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3

경악할 만한 습관에 단수!? 자극적인 인턴 생활~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5)~

안녕하세요, Alphajiri(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현재 인턴을 모집 중인 알파지리에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인턴의 도전을 전력으로 서포트해 왔습니다.

[인턴 채용 상세는 이쪽 ⇒ 케냐 농가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인턴십(일본어)]

이전에 "내가 인턴을 희망한 이유 - Alphajiri의 인턴 일기"에서 소개한 노세 에이고 씨도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생활을 통해 수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번에는 그런 노세 씨에게 "인턴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습니다. 알파지리 인턴이 반드시 거쳐가는 농가 리더(FO)집에서의 하룻밤 체험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자신의 성장으로 연결했을까요? 체류 중에는 가혹한 장시간 단수 등, 자극적인 체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묵었던 곳에서 목격한 현지의 일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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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8년 2월에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노세 에이고입니다. 인턴 기간 동안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며 매일매일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인턴 생활 속에서 일상이 된 "단수"와 "농촌 홈스테이"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단수의 영향력은 굉장해!!!

아프리카의 농촌에는 햇빛이 쨍쨍 내리쬡니다. 그 아래에서 콩 푸대자루를 내리는 작업을 하므로 흙투성이, 땀투성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돌아가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수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은 흘려보내고 싶어도 흘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싶어도 수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물이 전혀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 놓은 탁한 물에 소독약을 넣거나, 1.5리터짜리 식용수를 50엔 전후의 가격으로 구입해서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단수의 이유가 경악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수도국이 전기세를 내지 않아서 일어난 단수였던것입니다!(웃음)

인턴 기간 중에는 물이 없는 생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체감한 나날이었습니다. 귀국하기 2일 전에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사기가 오른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농촌(지역 담당자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느꼈던 것

인턴 기간 동안은 매입 작업이나 데이터의 정리에 쫓겼던 일상과는 다른, 소란에서 떨어진 농촌 생활을 만끽했습니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

밖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농촌의 생활이나 지역 농가의 과제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느긋하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순식간에 19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가로등도 없이 캄캄한 와중에 촛불에 불을 붙이면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촛불 아래에서는 "omena"라고 불리는 붕어조림(?)을 대접받았습니다. 맛은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20시. "이제 쉬어도 돼요."라는 말과 함께 침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이른 시간인데 말이죠!
너무 이른 취침 시간에 놀랐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생각하며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인턴 첫날을 마쳤습니다.

일본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현지에서의 문제에 맞서는 어려움

그리고 다음날. 어찌 된 일인지 지역 담당자가 1주일 전까지 해야 할 일을 반 정도 밖에 끝내놓지 않은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밭의 면적을 측정하거나 각 농가 수확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Kioboke"라는 지역의 농가를 하나하나 함께 방문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사태는 현지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농부들은 "YES!"라고 대답한 부탁과 지시에 대해서, 곧바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로만 대답을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이 습관은 농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시점으로 보면 이런 습관을 믿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턴 중 체류한 곳에서는 지금까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자, 몇 번이나 농가를 찾아가 끈질기게 전달해서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그 나름대로 지역 일대의 리더로서 눈앞의 과제에 대해 나름대로 개선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에게는 농가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관련된 사람의 마음까지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이나 의견을 제시해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또, 아프리카의 농가에는 현금을 빠르게 손에 넣고 싶다는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혀 브로커에게 팔아 버린다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브로커의 매입 가격이 싸다고 알고 있어도 그날의 생활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알파지리의 그룹 훈련과 농촌 환경 정비(포장 관리) 지원, 다른 사람이 일하는 모습으로부터 배우는 활동 등을 침투시킴으로써 눈앞의 욕망 이상으로 축적된 노하우나 공부가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일의 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조금 미덥지 못한 부분도 보인 지역 담당자였지만 그의 성장이 이 지역 일대의 농가 생활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알파지리 사원의 지도에 의해 점점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지역 담당자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형태

지역 담당자(FO)의 집에 머물며 그와 함께 행동하면서 생각한 것은 "지역 담당자가 어떻게 그룹 멤버들의 의식 개혁을 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인턴을 통해서, 지역 담당자에게는 자발적인 행동, 생각의 변화를 위해 그룹 멤버에 대한 계발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룹 미팅에서 성공한 농가에게 성공 체험담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공한 농가와 자신과의 차이", "왜 실패했는지",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공유하거나 의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농가들이 각자의 생각하는 힘이나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성공을 통한 자신감 획득, 그리고 그것들이 계속되면 성공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순환을 만들려면 역시 "지역 담당자의 리더십의 양성"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알파지리도 이 "지역 담당자의 리더십의 양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체류하는 동안 얼마나 공헌을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돌아다녔던 그가 몇 년 후에는 훌륭한 리더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홈스테이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2주일밖에 머물지 못해서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매우 귀중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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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턴을 희망한 이유~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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