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会起業家ブログ
Jul.
05

사파리가 펼쳐져 있는, 농업이 발달한 IT신흥국!?(From Chales 2/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7)~

Mambo? Poa!(How are you?Cool!)

올해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입니다. 그러고 보니, 케냐의 농촌에서 1개월 동안 일하면서 5kg의 다이어트에 성공했지만,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도로 살이 쪘습니다.

이전 블로그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의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에 대해서 적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에 사는 여러분은 좀처럼 상상도 못할, 케냐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케냐에서 일을 하거나, 놀러 가거나, 살거나 할 때 참고하세요!

~인구~

케냐에는 42개 부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족이라고 하면, 야마토 민족, 아이누, 류큐, 조선계열, 중국계...그리고 EXILE TRIBE정도? 일본인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네요.(웃음) 일본에서도 유명한 부족은 역시 마사이족입니다. 케냐의 국기에도 마사이 족의 방패와 창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마사이족의 인구 비중은 주요 민족 랭킹 톱 10 안에 들지 않습니다. 제일 인구가 많은 것은 키쿠유 족.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는 이 부족 출신입니다. 알파지리의 거점이 있는 마을 미고리에서는 인구 비율 4위를 차지고 하고 있는 오루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언어~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입니다. 스와힐리어는 서 아프리카 지역 공통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공교육을 받은 국민은 모두 영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 거리의 간판, 학교의 교과서 등은 대부분 영어로 되어있으며, 아프리카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영어만 알면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부족에는 각각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케냐 국민은 자신의 부족어, 스와힐리어, 그리고 영어 3개국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영어로 말을 할 수 없다!라고 알려진 일본과는 딴판이네요(웃음).

또 현지인들의 대화에는 같은 부족끼리는 부족어로 다른 부족끼리는 스와힐리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 밖에 못하는 저에게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는 것이 힘들었습니다(웃음).

~의복~

기본적으로는 일본인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면, 케냐 국기 문양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일장기 무늬의 팔찌나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볼 수 없죠. 다만 미고리의 농민들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찢어진 옷을 입고 있거나, 그들이 쇼핑에 가는 시내에 헌 옷 가게가 많이 늘어서 있거나 해서 현지인에게 있어서는 새 옷을 손에 넣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비록 새 옷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멋쟁이였습니다. 이는 저의 독단과 편견임을 사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웃음) 일본인의 치장은 무난하다고 할까, 차분한 색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케냐인들은 시내에 나갈 때나 집회에 참석할 때 교회에 갈 때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멋을 부렸습니다. 화려한 무늬가 많아서, 산뜻하고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마사이족 사람들이 마사이 천을 입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낯익은 붉은 체크무늬의 천도 있고, 노랑, 파랑, 녹색 등 여러 가지 색의 천을 입고 있었습니다. 모두 우아하게 차려 입고 있었으므로, 나도 일본에서 입어서 유행시켜야지!라고 생각해서 선물로 샀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캉가라고 하는 스와힐리어 이름이 붙은 천을 입은 여성도 많았습니다.

~식사~

케냐인의 주식은 우갈리. 옥수수와 카사바, 밀렛(펄 밀렛)등의 가루를 물에 풀어 반죽해서 만듭니다! 인터넷에서 "맛없는 비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입안이 푸석푸석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쌀을 사랑하는 일본인에게는 낯선 음식인 것은 틀림없습니다!(웃음) 케냐인의 우갈리 사랑은 대단해서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잔뜩 쌓여있는 우갈리를 칼로 각자 원하는 만큼 잘라먹었습니다.

우갈리와 함께 고기나 생선, 수쿠마(케일)란 채소를 먹는 것이 케냐 스타일.

이 외에도 얇은 크레이프 같은 빵의 차파티, 다진 고기와 콩을 넣은 껍질을 튀긴 스낵인 사모사, 우유를 섞은 홍차 차이 등... 어라? 알아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모두 인도 요리 아닌가?! 사실 케냐의 식생활에는 인도 등 남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의 영향이 짙게 뿌리박고 있습니다.

또, 포리지라는 곡류를 끓여서 죽으로 만든 것도 케냐인들은 즐겨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죽보다는 팥죽?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농민 분의 댁에 가면 컵에 가득 담아 주지만 힘내서 절반 정도를 마시는 것이 겨우였습니다(웃음).

~주거~

농민들의 상당수가 목재와 흙벽, 초가지붕이나 함석지붕으로 만든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축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공통된 것은 손님을 불러들일 것 같은 큰 방이 있는 건물이 있는 것, 가축을 숨기는 오두막이나 공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조명은 태양열 집열판을 지붕에 설치해서 발전을 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수도도 제대로 뚫려 있지 않아서, 근처에 물을 길어올 수 있는 곳에서 조달. 가스 대신 모닥불로 요리를 만들고, 목욕물을 데웠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밭 속의 노천탕"이었습니다. 가옥의 뒤쪽에 함석으로 삼면을 둘러싼 욕실이 있고, 거기서 통에 모아놓은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 몸을 씻는 것입니다. 홈스테이를 했을 때, 처음에는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밖에서는 벌거벗기 싫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아무래도 좋아졌습니다(웃음).

벽돌로 지은 집들도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벽돌을 쌓아올리고 굽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벽돌로 지은 집은 permanent house(뜻:내구성 있는 집)으로 불리며 이를 짓기 위해서 저금하고 있다고, 홈스테이로 머물렀던 집의 주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통~

현지의 공공 교통수단은 마타투라는 승합 버스(일반적으로 도요타의 하이에이스 중고차가 많았습니다)나 툭툭이라고 부르는 오토바이 택시, 도시 간을 이동하는 고속버스가 일반적입니다. 마타투는 좁은 차내에 손님을(가끔 닭도) 가득 태우고는 무서운 속도로 달립니다! 이곳은 도로가 2차선뿐으로, 앞선 차량을 추월할 때는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 맞은편에서 차가 올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실제로 마타투는 사고가 많은 편으로, 마타투의 차 안에는 사고 주의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는 사정이 좋지 않고, 오토바이로 운전수 뒤에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수도 없이 아파졌습니다. 또 때마침 우기에 인턴 활동을 해서 그런지 집중호우로 도로가 엉망이 된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를 주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장자리의 도랑에 타이어가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처럼 견인차 같은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 자리에서 동석했던 현지인들끼리 힘을 모아서 차를 빼냈습니다.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일본 기업의 제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신차는 없고 중고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길에서 갑자기 소나 닭이 튀어나와서 차로 칠 것 같은 경우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웃음).

~경제~

케냐 경제의 큰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농업과 농업 관련 산업, 관광업입니다. 농업품 수출은 홍차, 커피, 절화가 큰 점유율을 차지합니다. 케냐라고 하면 커피를 떠올리는 것도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이미지지요!

절화는 네덜란드 등 유럽의 시장에 장미 등을 수출하고 있어 국내에 온실이 있는데, 저도 나이로비 근교의 나이바샤 호반에 있는 대규모의 장미 온실을 보고 놀랐습니다.

관광업에서는 사파리의 존재가 큽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진짜 사파리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사파리가 아닙니다. 저도 인턴 수료 후에 3개 사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야생 동물들과 멋진 자연에 둘러싸이면, "아, 지금 엄청나게 아프리카를 느끼고 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 IT의 발달도 두드러지는 케냐. 사실 케냐 전체의 휴대 전화 보급률은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미고리의 농가들도 거의 한 집에 한 대씩(폴더형 휴대폰)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케냐의 모바일 업체가 제공하고 있는 모바일 뱅킹 서비스 "M-PESA". SMS 기능을 사용해서 계좌를 만들어 돈을 송금하거나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작은 상점이나 식당에서 결제도 가능합니다. 알파지리가 농민들과 돈거래를 할 때도 M-PESA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에 의해서 은행 이용이 힘든 빈곤층의 사람들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모바일 뱅킹이 보급되지 않고 있는데, 케냐는 이 분야에서는 모바일 선진국에 다가가고 있는 거 아닐까요?!

또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실리콘 사바나"라고도 불리고 있어서, 세계의 테크놀로지 기업이 점점 모여들면서 IT 산업의 점진적인 발전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제 설명을 통해서 케냐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기 쉬워지셨나요? 다음에는 케냐의 생활 상황을 바탕으로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활동에 대해서 보고하고자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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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5

“그래, 케냐에 가자.”(From Charles 1/4)~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6)~

Jambo!Habari yako?(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 기분은 어떠세요?")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에 걸쳐 약 1개월 동안 Alphajiri(알파 지리)에서 인턴으로서 활동하고 있던 시모쿠라 찰스 겐키라고 합니다. 케냐에서 귀국하고 2개월이 지났습니다. 절찬 케냐 앓이 중입니다. 현지에서 들었던 지역 음악과 레게 음악을 YouTube에서 끊임없이 듣고 있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케냐와 아프리카가 나를 부르고 있는데! 반드시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Alphajiri에서 인턴 활동에 지원하고 직접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내가 알파지리 인턴에 지원한 세 가지 이유

도대체, 왜 아프리카에서의 소셜 비즈니스 벤처에서 인턴활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경력의 방향을 정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산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떤 느낌이고, 나에게는 그 삶을 다할 각오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라는 것입니다. (장대하네요... (웃음))

저는 어린 시절부터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일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서도 건방지게도 이런 것을 적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개발도상국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구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다양한 일을 해서 세계의 사람들을 내가 가진 힘으로 구하고 싶습니다.」

소심하며 스포츠도 몹시 서툰, 전혀 "힘" 없는 소년이 영웅이 되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했던 거죠.(웃음)

고등학교 중 1년 정도 유학을 하고, 대학은 국제 공공 정책을 배울 수 있는 학부를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마음껏 공부하고 개발도상국에 많이 가서 현장을 보고, 국제기관에서 인턴 활동을 하고, 국제 협력 관계를 하는 곳에 취직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대학생활 4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은 고향의 시의회 의원 아래에서 인턴십을 했습니다. 다음 해 봄까지 현 의회 의원 선거의 스태프를 맡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에는 도쿠시마에서 개최된 고등학생 여름학교의 스태프로 참여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1년간 활동. 어라...? 전부 국내 활동이잖아(웃음) 그리고 일본주 동아리라니 대체 뭐야, 술 마시는 동아리?(웃음)

이렇듯이 장래의 경력으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것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둔 봄 방학에 "그래, 케냐에 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즈니스에 의한 사회 과제의 해결의 구조를 실제로 보고 검증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제기관이나 NGO, NPO 등과 같은 퍼블릭 섹터나 비영리 조직에 의한 사회 문제 해결에 계속 관심이 있었고, 경력도 그런 것으로 쌓아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에 시 의회 의원 밑에서 인턴 활동을 했던 것도 그 배경에 퍼블릭 섹터에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의원 인턴 경험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리크루트 출신으로 선거에서는 반드시 당선. 정책 입안 및 홍보에서는 높은 비즈니스 스킬을 살리고 다른 의원을 압도. 시와 현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활동하고 그 아래에 모인 인턴생도 대단한 사람들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소셜 비즈니스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 점점 비즈니스×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을 보자. 대학 4년간 개발도상국에서의 경험이 전혀 없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도 "그래, 케냐에 가자."

세 번째 이유는 「농업 유통을 개혁하고 빈곤 농가를 뒷받침한다는 Alphajiri의 사업에 강한 흥미를 품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대학의 일본주 동아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주 동아리는 뭐 하는 곳이야?" "그래서, 먹고 마시기만 하는 곳이야?(술 많이 마시는 곳이야?)" 등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물론 멤버 모두가 일본주를 좋아해서, 자주 모여서 마시는 동아리입니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이 동아리는 "매력 있는 일본주를 젊은 세대가 이끌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국내의 일본주 총 소비량, 양조장 수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이 있고, 진화도 하고 있는 일본주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설립된 동아리입니다.

동아리 선배에게서 이 뜨거운 마음을 전달받은 저는 타고난 영웅심에 불이 붙어 "동아리의 대표가 되어 일본주 업계를 고조시키는 힘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해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대학 축제에서 일본주를 팔거나, 양조장에서 제조 체험 투어를 하거나, 마을의 일본주 행사에 참석하거나, 일본주 콜라보레이션을 구상하거나, 젊은이와 일본주를 연결하는 활동을 하면서 일본주 제조 공정이나 유통 구조, 마케팅의 실제 등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일본주는 농업이나 자연환경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생산자가 안정되어 생산·판매하고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의 어려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력에서 농업이나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Alphajiri의 인턴생 모집 광고가 갑자기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모두 아시겠지만 거기서 저는 이렇게 결심했던 겁니다. "그래, 케냐에 가자."

…라는 것으로 계획적인 듯하면서 사실은 무계획적인 경위로 Alphajiri의 인턴생이 됐다는 이야기로, 이번 포스팅은 끝내겠습니다. 다음에는 현지에서의 인턴 활동과 생활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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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3

경악할 만한 습관에 단수!? 자극적인 인턴 생활~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5)~

안녕하세요, Alphajiri(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현재 인턴을 모집 중인 알파지리에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인턴의 도전을 전력으로 서포트해 왔습니다.

[인턴 채용 상세는 이쪽 ⇒ 케냐 농가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인턴십(일본어)]

이전에 "내가 인턴을 희망한 이유 - Alphajiri의 인턴 일기"에서 소개한 노세 에이고 씨도 알파지리에서의 인턴 생활을 통해 수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번에는 그런 노세 씨에게 "인턴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습니다. 알파지리 인턴이 반드시 거쳐가는 농가 리더(FO)집에서의 하룻밤 체험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자신의 성장으로 연결했을까요? 체류 중에는 가혹한 장시간 단수 등, 자극적인 체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묵었던 곳에서 목격한 현지의 일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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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8년 2월에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노세 에이고입니다. 인턴 기간 동안 다양한 업무를 체험하며 매일매일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인턴 생활 속에서 일상이 된 "단수"와 "농촌 홈스테이"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단수의 영향력은 굉장해!!!

아프리카의 농촌에는 햇빛이 쨍쨍 내리쬡니다. 그 아래에서 콩 푸대자루를 내리는 작업을 하므로 흙투성이, 땀투성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돌아가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수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은 흘려보내고 싶어도 흘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싶어도 수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물이 전혀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 놓은 탁한 물에 소독약을 넣거나, 1.5리터짜리 식용수를 50엔 전후의 가격으로 구입해서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단수의 이유가 경악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수도국이 전기세를 내지 않아서 일어난 단수였던것입니다!(웃음)

인턴 기간 중에는 물이 없는 생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체감한 나날이었습니다. 귀국하기 2일 전에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사기가 오른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농촌(지역 담당자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느꼈던 것

인턴 기간 동안은 매입 작업이나 데이터의 정리에 쫓겼던 일상과는 다른, 소란에서 떨어진 농촌 생활을 만끽했습니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

밖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농촌의 생활이나 지역 농가의 과제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느긋하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순식간에 19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가로등도 없이 캄캄한 와중에 촛불에 불을 붙이면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촛불 아래에서는 "omena"라고 불리는 붕어조림(?)을 대접받았습니다. 맛은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20시. "이제 쉬어도 돼요."라는 말과 함께 침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이른 시간인데 말이죠!
너무 이른 취침 시간에 놀랐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을 생각하며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인턴 첫날을 마쳤습니다.

일본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현지에서의 문제에 맞서는 어려움

그리고 다음날. 어찌 된 일인지 지역 담당자가 1주일 전까지 해야 할 일을 반 정도 밖에 끝내놓지 않은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밭의 면적을 측정하거나 각 농가 수확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Kioboke"라는 지역의 농가를 하나하나 함께 방문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사태는 현지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농부들은 "YES!"라고 대답한 부탁과 지시에 대해서, 곧바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로만 대답을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이 습관은 농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시점으로 보면 이런 습관을 믿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턴 중 체류한 곳에서는 지금까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자, 몇 번이나 농가를 찾아가 끈질기게 전달해서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그 나름대로 지역 일대의 리더로서 눈앞의 과제에 대해 나름대로 개선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에게는 농가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관련된 사람의 마음까지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이나 의견을 제시해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또, 아프리카의 농가에는 현금을 빠르게 손에 넣고 싶다는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혀 브로커에게 팔아 버린다는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브로커의 매입 가격이 싸다고 알고 있어도 그날의 생활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알파지리의 그룹 훈련과 농촌 환경 정비(포장 관리) 지원, 다른 사람이 일하는 모습으로부터 배우는 활동 등을 침투시킴으로써 눈앞의 욕망 이상으로 축적된 노하우나 공부가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일의 기한을 지키지 않는 등 조금 미덥지 못한 부분도 보인 지역 담당자였지만 그의 성장이 이 지역 일대의 농가 생활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알파지리 사원의 지도에 의해 점점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지역 담당자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형태

지역 담당자(FO)의 집에 머물며 그와 함께 행동하면서 생각한 것은 "지역 담당자가 어떻게 그룹 멤버들의 의식 개혁을 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인턴을 통해서, 지역 담당자에게는 자발적인 행동, 생각의 변화를 위해 그룹 멤버에 대한 계발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룹 미팅에서 성공한 농가에게 성공 체험담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공한 농가와 자신과의 차이", "왜 실패했는지",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공유하거나 의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농가들이 각자의 생각하는 힘이나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성공을 통한 자신감 획득, 그리고 그것들이 계속되면 성공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순환을 만들려면 역시 "지역 담당자의 리더십의 양성"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알파지리도 이 "지역 담당자의 리더십의 양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체류하는 동안 얼마나 공헌을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돌아다녔던 그가 몇 년 후에는 훌륭한 리더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홈스테이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2주일밖에 머물지 못해서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매우 귀중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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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턴을 희망한 이유~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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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9

내가 인턴을 희망한 이유~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4)~

(이 근처에서는 보기 힘든 아시아인에게 모여드는 초등학생과 그 옆에서 콩을 계량을 하는 우리들)

안녕하세요, 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대호평이었던 오쓰카 씨의 알파지리 인턴생 일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2월에 머물렀던 노세 씨가 집필해 주셨습니다.
(오쓰카 씨의 알파지리 인턴생 일기를 읽는다)

노세 씨의 알파지리 인턴생 일기 첫번째는 "알파지리의 인턴에 지원한 이유"입니다(총 4회).

케냐 농촌에서의 생활이란?

안녕하세요! 2월부터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노세 에이고입니다.

앞으로 4차례에 걸쳐서 저의 인턴 생활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첫번째로는 제가 "알파지리의 인턴에 지원한 이유"에 관해서입니다.

제가 인턴에 지원한 이유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개도국 지원 현장을 피부로 느끼고 개발도상국만의 과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기는 덴마크 유학 중에 알게 된 가나의 쓰레기 문제 프로젝트였습니다. 가나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이 없어서 사방에서 악취가 나고 강은 오염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NPO로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을 들일수 있을지, 쓰레기를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에 대한 솔루션을 다국적의 멤버로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활동을 통해서 가나인에게 조금이나마 그 나라의 상황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아프리카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피부로 느끼고 싶어서 가나로 발을 옮겼는데, 실제로 쓰레기 문제도 심각했습니다만, 체류기간 동안 "잘도 이 환경에서 살아가는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나의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강은 오염으로 심상치 않은 색을 띠고 있고, 차가 달리면 흙먼지로 앞을 볼 수 없고, 모두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파도 병원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일도 잦다고 합니다.

우리 나름대로 문제 해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무엇이 문제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함께 생각했습니다.

우선 쓰레기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①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버리고 ②쓰레기를 수집하는 업체가 없다,라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먹은 가축을 인간이 먹거나, 오염된 강물이 인체에 들어가서 병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깨진 병 위를 맨발로 걷고 다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해서입니다.

①에 대해서는 a)우선은 한 지역에 밀착해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 것을 요청하거나 교육을 시키는 모델 지역을 만든다 b)사람들의 의식 개혁으로, 가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매스미디어의 드라마를 만들어 학교나 병원, 공공 장소에 송출한다.

②에 대해서는 우리가 현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사원을 고용해서 각각의 지역 커뮤니티 단위로 쓰레기를 찾으러 가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것은 재활용을 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쓰레기는 적절한 처리를 한다. 커뮤니티에는 책임자(현지의 리더격인 사람)를 배치하자는 정책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덴마크나 일본에 있는, 페트병을 기계에 넣으면 소액의 돈이 돌아오는 기계를 설치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 기계를 설치하더라도 채산은 맞을 것인가,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의 과제가 발견되는 논란이 정체된 채, 프로젝트가 종료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책상 위에서 완결짓고, 실제 프로젝트는 현지에 돌아간 가나인에 의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데 상당히 힘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다른 나라의 상황을 본 적이 없어서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빈곤 문제 해결이 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좀처럼 찬동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가나를 찾아가서 직접 본,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봤던 빈곤한 아프리카의 상황은 잊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도상국 지원을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다고 생각해서, 취직이 결정된 상태이기는 했지만, 농촌 빈곤 문제에 대해서 현장에서 해결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 알파지리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

인턴생활 중에는 직원들에게 오무가라고 불렸습니다. 스와힐리어로 '힘세다'라는 뜻입니다. 별명을 지어달라고 하자 기꺼이 지어 주셨습니다. 60kg에 달하는 콩 자루를 어깨에 얹고 다섯 걸음만에 도움을 요구하는 나에게 딱이라고 합니다. 이런 별명을 지어 준 쟈크통 군, 스티브 군, 헤즈본 군과 현장으로 향하는 트럭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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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농촌의 일상~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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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07

케냐 농촌의 일상~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3)~

(인턴생 오쓰카 씨가 지역담당자의 집에 묵고 있을 때의 사진)

안녕하세요, 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오쓰카 씨의 케냐 체류 일기, 제3편은 "일상"입니다.

미고리에서 보통 어떻게 생활하면서 알파지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겠습니다. 무려, 지역 담당자의 집에서 숙박체험까지...

케냐 농촌에서의 생활이란?

안녕하세요, 오쓰카 마유나입니다.
케냐의 농촌 생활...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최근 생활 모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외출 중에 있던 일

오늘은 어디 가? 컨디션은 어때? 저녁 뭐 먹어? 나도 먹으러 가도 될까? 결혼 할래?

라고 외출할 때마다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야채 하나를 사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외국인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때로는 줄지어 계속해서 따라옵니다. 마치 왕의 행차 같은 모습이지요.(웃음)

도로에는 차보다 소가 더 많고,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자동차 바퀴에 펑크가 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주유소는 기름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은 10톤 트럭을 타고 가는 중에 기름이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아저씨가 합승하는 경우도 있고, 앞을 달리는 트럭의 배기가스 때문에 옷이 검게 되기도 합니다.

이동 중에는 모험에 넘칩니다.

(2)평소의 식생활

여기에서의 주식은 옥수수 가루를 빚어 만든 우갈리입니다. 현지의 분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나 외식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우갈리를 먹습니다.

No Ugali No Life인 국민들에게 둘러쌓여서, 처음에는 '아, 나는 올 지역을 잘못 선택했을지도...'라며 조금 절망했던 것이 본심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걷는 법(일본의 해외여행관련 사이트)'에 "루오족이 케냐에서 제일 맛있는 우갈리를 만든다"라고 기재된 것을 본뒤부터 왠지 우갈리가 맛있게 느껴지고 있습니다.(케냐에는 42개 부족이 있고, 미고리에는 루오족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나 영향 받기 쉬운 건가...밖나가면 꽤 높은 확률로 우갈리를 먹기 대문에, 집에서는 자주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일본 쌀은 아니지만 역시 일본인으로서 쌀을 먹으면 안심이 됩니다. 인근 노점에서 고기나 야채를 구입하면 한끼에 30엔 이내로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


(마음에 든 케냐 요리(Sambosa) 만드는 법을 배웠던 행복한 일요일)

(3) 최근 한 일

평소에 하고 있는 매입 작업에 더해서, 지난주에는 어떤 지역 담당자의 집에서 묵으며 지도를 했습니다. 첫 시도입니다. 두근 두근.

Alphajiri에서는 30~40명의 농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지역 담당자를 각 지역에서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 담당자의 이해력/지도력에 따라 그 지역에서 나는 콩의 질과 팀워크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문제점을 감안해 숙박을 했습니다.

하루동안 지켜보고 느낀 것은 개개인에게 차분히 시간을 들여 자세히 지도하면 크게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묵으며 지도를 한 그 지역 담당자는 한꺼번에 많은 일이 쌓이면 어떤 것은 놓치게 되고, 농가를 돌아볼 때마다 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어째서 그 작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확인을 여러번 했습니다.

몇번이나 같은 공정을 진행하던 중에 숫자가 많은 일도 확실 해내며, 발견한 문제점은 농가에게 알리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도 잊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주위에 전달할 힘이 모자라거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있지만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잘못된 정보를 가르친다...등등, 당연하지만 문제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릅니다.

그런 와중에 알파지리의 직원이 각 지역 담당자와 확실히 마주하고, 모두가 일정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날마다 무언가 신기한 사건이 일어나서 저는 항상 웃어 버리지만, 현지 직원에게는 뭐가 그리 재밌냐고 놀림을 받습니다. 왠지 하루 하루가 못 견디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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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의 일이란?~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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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09

인턴의 일이란?~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2)~

안녕하세요, 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오쓰카 씨의 케냐 체류 일기 제2편은 "알파지리의 일 소개"입니다. 케냐 체류 중에 알파지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거기서 무엇을 느끼고 앞으로 어떻게 하게 될까요?

알파지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온 학생도 고군분투 중입니다!

인턴의 일의 현실!

안녕하세요! 오쓰카 마유나입니다.

오늘 아침, 거리를 걷다가 소 10마리를 줄테니 결혼해 주세요!라고 지나가던 남성에게 구혼을 받았습니다.
케냐에서는 결혼할 때 남성은 지참금으로 부인이 될 여성에게 소를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저는 시세를 잘 몰라서 10마리가 많은지 적은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수컷인지 암컷인지...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뭐, 아무래도 좋겠지요. 이번에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내용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1월)은 콩의 수확 시기여서 낮에는 주로
· 농작물의 매입 작업(각 지역을 돌며 농작물 회수, 계량, 운송, 반입, 대금 지불)
· 시범농장에서의 농업(수확)
· 농가끼리의 그룹 미팅 시찰
을 하고 있고, 아침이나 저녁 이후에는 농가의 다양한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해서 데이터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농가에 동행한 후 발견한 문제는?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업이라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콩의 매입 작업의 경우 '지정한 장소/시간에 지정된 품질의 상품을 가지고 온다'고 하는, 일본에서는 당연한 일을 이곳의 농가는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포함해, 케냐에 체류하면서 느낀 과제 중에서도 "지역 담당자의 통솔력을 높이는 것"은 우선 순위가 매우 높은 과제라고 느꼈습니다.

또, 어제는 지역 담당자의 농가 주변에 동행해서 처음으로 계약 농가의 농지를 봤습니다.

알파지리의 직원이 몇 번이나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알파지리의 지침에 따르고 있지 않은 농가들이 많이 보여서 매우 놀랐습니다.

왜 지침에 따르지 않고 있는가 하면, 지역 담당자의 지도가 각 농가에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 지역 담당자의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콩의 품질이나 팀워크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지역 담당자 한 분과 함께 행동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생각한 다음, 그것을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려고 합니다.

또 다음 주에는 가공 식품 회사에 영업을 하기 위해 나쿠루와 엘도렛이라는 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셔서 매일매일 설레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것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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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국의 잠재력에 주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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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04

도상국의 잠재력에 주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알파지리의 젊은 도전자들의 궤적(1)~

안녕하세요, 알파지리의 니시다입니다.
저희는 현재 학생 인턴을 받고 있습니다.

2018년 제1호는 오쓰카 마유나 씨.
그녀는 국제성이 풍부하며, 여러 나라에 살거나 유학을 다녀오거나 여행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란 무엇일까요? 먼 곳에서 알파지리에 와 주신 이유란 무엇일까요?

1개월 동안, [인턴 학생 일기] 잘 부탁 드립니다!
(English continues after Korean).

도상국의 잠재력에 주목해 문제 해결을!

처음 뵙겠습니다. 현재 알파지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오쓰카 마유나라고 합니다.
사람이 많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쭈볏쭈볏 거리를 걷고 있던 나이로비에서 9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미고리라고 하는 치안이 좋은 작은 마을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일본어로 반겨주셔서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빈곤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2017년 9월까지, 복지 국가이며 난민수용대국이기도 한 스웨덴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생긴 친구 중에는 아프리카에서 배로 온 사람, 중동에서 걸어서 온 사람 등이 있어서, 자신이 선택할 여지도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스웨덴에 온 분들이 있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정보는 얻고 있었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겪어본 적이 없는, 상상을 초월한 문제에 직면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문제가 얽힌 결과이긴 하지만 빈곤으로 인해 삶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빈곤 지원이라고 하더라도 여러가지 규모의 활동이 있겠지만, 도상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상국 지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도상국이나 각 지역의 잠재력에 주목해서 지역과 밀접한 문제를 해결 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미고리라는 작은 농촌에서 가난과 무지에 지지 않는 농촌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알파지리의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이 가깝고 건조한 이 땅에서 일주일에 몇번은 손으로 빨래를 하고, 졸졸 나오는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고, 가끔 일어나는 정전이나 단수에 분투하고 있다보면 사회 환경이 갖추어진 선진국이라는 틀에서 뛰쳐나와 개발도상국의 농촌이라는, 여태까지 살아본 적 없는 환경에 왔구나, 라고 느낍니다.

농촌 지역 특유의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달리, 매일 다양한 업무에 도전하다보면 매일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일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Hello. I am Mayuna Otsuka, an university student from Japan and now working as an intern at Alphajiri.

When I arrived at Nairobi, I remember I was walking through the town a bit nervously because of the crowd of people and the hectic atmosphere. After 9 hours of bus ride from Nairobi, I arrived at this small town called Migori, where I can walk outside without being too nervous even if I'm a young girl and a"mzungu"(="foreigner"in Swahili).

This time I will post about why I got interested in solving poverty issues.

Until last September, I was doing an exchange in Sweden, which is a country famous for the social welfare system and as a country that are receiving a lot of refugees. During my stay I made some friends who came all the way from African continent by boat, and there were even people who came from middle east Asia by foot. They had no choice but to come to Sweden to survive. I was shocked. I didn't know what to say when I heard about their stories. This is when I realized I knew nothing about the world even though I watch the news and read the newspapers.

Of course poverty is not the only reason of this matter, but I felt that I need to know more about people who doesn't have an opportunity to make choices in their lives because of poverty. When it comes to these poverty issues there are some people/companies/organizations that say developing countries should learn how the developed countries function and copy them. Is this really true?I believe no. I think it is more important to focus on the possibilities and the potential the developed countries or the local area has, and try to solve problems at a local level. This is why I decided to be an intern at Alphajiri, where they are trying to make farmer's life better by considering the local issues.

Every time I feel the sun being so close to the ground, when I wash my clothes by hand few times per week, or when I take the shower with warm water that comes out little by little, sometimes battling with the no electricity no water life, I realize that I got out from the world where everything is organized, and that I'm in a small town in Kenya. It is a bit weird that the time seems to pass by very slowly in this countryside. But at the same time it passes so fast when I work at Alphajiri.

I will post again about what I do during my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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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1

과테말라 토착민이 안고 있는 문제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ILOITOO(이로이토) 사노 유키 현지 인턴의 배움~

안녕하세요! 지난해 6월부터 반년 동안 ILOITOO(이로이토)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사노 유키입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저 나름대로 생각한 ILOITOO 사업이 갖는 의의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 과거의 블로그
공방의 과제, 한발씩 마주보자~ILOITOO(이로이토)사노 유키 현지 인턴의 배움~(일본어)
인턴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 그것은 "책임감"이었습니다. ~ILOITOO(이로이토)사노 유키 현지 인턴의 배움~(일본어)

■ 과테말라 토착민과 민족의상
ILOITOO에서는, 과테말라 현지 공방에서 마야계 토착민의 여성을 고용해 "코르테"라고 불리는 민족의상의 천을 업사이클해서, 랩오버 치마로 만들어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과테말라는 중남미 중에서도 인구 중 토착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국민의 절반가량이 마야계 선주민입니다. 선주민 여성의 대부분은 위피르(관두옷)에 코르테라는 천을 두른 민족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손으로 직접 짠 천에 자수로 장식한 화려한 의상은 마을별·지역별로 디자인이나 색깔에 특징이 있고, 그 선명함 때문에 "과테말라 레인보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나는 처음 발을 디뎠을 때부터 그 화려한 세계에 매료되어 지금은 완전히 과테말라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멋진 천이 늘어서 있는 시장의 모습)

■ 과테말라 선주민이 안고 있는 과제
화사한 민족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직물·자수에 대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스페인어 외에 독자의 언어로 말하는 마야계 선주민입니다만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테말라에서 생활하면서 특히 선주민의 빈곤과 민족 격차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대체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선주민"이 빈곤의 대명사라고도 일컬어집니다만, 과테말라도 예외가 아니라 선주민의 대부분은 농촌에 살고 있으며 물도 전기도 제대로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편 도시 지역에서는 유럽계나 라디노라 불리는 유럽계와 원주민 혼혈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몇 번인가 갔던 조금 비싼 레스토랑에서는 선주민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알모롱가 마을의 시장. 이로이토에서는 이 마을의 코르테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ILOITOO의 공방이 있는 San Juan la Laguna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불리는 아티틀란 호수 주변에 있는 원주민 마을로,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습니다. 선착장에서 마을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화려한 민예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있으며, 또한 여성 그룹을 지원하는 미국의 NGO등이 몇 곳이 들어와 있으며, 과테말라의 선주민 마을 중에서는 비교적 풍부한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일을 찾아 이로이토의 공방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끊이질 않습니다. 현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이 마을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나요?", "지금은 구인하지 않나요?"라고 질문해 옵니다. 현지인 슈퍼바이저에게는 끊임없이 구인의 문의가 들어오고 있고, 일단 거절을 하더라도 공방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몇번이나 있었습니다.

■ 과제 해결을 위해서
그녀들이 요구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입니다.
관광 비수기인 우기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이 "해마다 이 시기는 전혀 수입이 없다."고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NGO의 여성 그룹도 외국인 관광객 대상의 민예품을 만드는 곳이 많아 관광객의 증감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또 NGO의 지원으로 일시적으로 풍요로워지더라도 NGO가 빠져나가고 1년 후, 2년 후에는 다시 빈곤한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로이토의 공방에서는 현지 여성들에게 매일 7.5시간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안정된 고용와 안정된 수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과테말라 최대규모라고 일컬어지는 치치카스테낭고의 민예품 시장)

또 현지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그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현재 ILOITOO의 공방에서는 성과제를 취하고 있습니다. 처음 연습 기간은 최저 임금을 보장하고, 그 이후로는 생산량에 따라 급여를 지불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정급+α(생산량에 따라 달라지고, 상한이 있음)형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생산률을 더 높이고, 많은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전체 성과제로 변경 했습니다. 변경 된 이후는 멤버의 사기가 올라가면서 생산성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전의 두배 가까이 벌어들일 수 있게 된 직원도 있습니다.
극심한 격차 사회·계급 사회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고도의 교육을 받아도 수입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제가 인턴 전에 유학했던 멕시코에서는 "석사 학위를 가진 택시 기사가 많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만큼 보답하는 직장, 기회를 주는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의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녀들 자신뿐 아니라 가족이나 아이들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방이 있는 San Juan la Laguna의 거리의 풍경)

■ 과테말라의 여성들을 돕는다
또 ILOITOO의 사업을 통해서, "여성 일자리"에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고 여성의 임파워먼트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테말라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면서, 여성의 일이 "가치가 낮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 아닌가 하고 느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취사·세탁·청소 등 가사나 육아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졌으며, 특히 농촌에서는 여자가 밖에서 일하지 않고 가사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것에는 물론 한푼의 대가도 지불되지 않습니다.

또, 선주민 여성의 대부분은 자수나 직물 등 수작업을 통해 임금을 벌지만, 예를 들어 여성이 1시간 동안 자수를 놓아 버는 임금은 남성이 5분간 툭툭(삼륜택시)를 몰고 받는 돈과 비슷하거나 또는 그 이하입니다. 아주 고도의 기술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도 여성의 일이기 때문에 가치가 낮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같은 여성으로서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성을 고용해 임파워먼트를 실행하려고 해도 특히 보수적인 선주민의 커뮤니티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ILOITOO에서는 자수나 비즈 상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만, 이들은 공방이 아니라 특히 그 기술이 뛰어난 Santiago Atitlan라는 마을의 여성 그룹에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공방이 있는 San Juan la Laguna과 비교해도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적어서, 젊은 세대에도 스페인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성이 밖에서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 아니기 때문에 2주에 1번 공방에 납품을 하러 올 때에도 남편이 함께 따라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티 속에서도, 부업으로서 할 수 있는 자수나 비즈의 생산을 부탁함으로써 여성이 집에 있으면서도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또 이러한 방법을 쓰면 어린아이나 병든 가족을 돌보거나, 임신 등의 이유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여성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 고용을 만들어 내고 일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수입을 얻은 여성은 가계에 기여하고 가정 내에서 힘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말에 열린 친목회에서 찍은 사진. 이 마을 의상의 특징인 사각의 자수는 ILOITOO의 스커트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 또 하나의 의의
서두에서 과테말라의 민족의상에 대해서 조금 말했지만, 제가 생각하는 ILOITOO사업의 또 하나의 의의는 전통 공예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과테말라 레인보우"라고도 불리는 아주 선명한 색상의 민족의상이지만, 현재 그 착용률은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방이 있는 San Juan la Laguna에서도 나이 든 분은 대부분 민족의상을 입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T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과테말라에는 미국에서 헌 옷이 대량으로 들어와 있어서, 한 장 한 장 손으로 짜고 수를 놓는 민족의상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또 민족의상 중에도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나, 자수가 아닌 무늬가 프린트된 것, 블라우스 같은 것을 착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들의 의상이 좋지만 비싸서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을 공방에서 일하는 멤버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민족의상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고도의 기술까지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마을 어린이들은 스페인어로 밖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방 직원 중에서도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아이에게는 적극적으로 현지 언어로 말하도록 힘쓰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지 않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들의 선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점차 흐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래된 민족의상을 업사이클 해서 일본에서 가치 있게 판매하는 ILOITOO의 사업은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공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만든 상품이 어떻게 판매되고 있는지 알게 되어서 자신의 민족의상이나 기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통 공예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스페인에 의한 식민지화와 장기간에 걸친 내전 속에서 억압받아온 과테말라 선주민이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에 대해서 더욱더 자부심에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방 멤버에게 생일축하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함께 일한 경험은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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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5

보더리스 그룹 대표 다구치 카즈나리가,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인 50″에 선출되어 닛케이 비즈니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게재호:2019년 2월 4일 발행
■ 제목: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인 50(P46)

게재호에서는 닛케이 비즈니스가 50주년 특집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인 50인"을 선출.

이 기획 안에서는 혼돈한 세계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보다 뛰어난 일본인 50인을 CHANGE(변화), CHALLENGE(도전), FASCINATE(매료), SAVE(구원)의 4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서 소개.

다구치는 SAVE(구원)의 한 사람으로서 교세라 명예 회장인 이나모리 카즈오 씨 등과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기사 내에서는, 다구치가 사회 기업가를 꿈꾸는 계기가 된 사건부터 현재의 전망까지가 간결하게 실려 있습니다. 꼭 봐주세요.

▼온라인판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인 50「SAVE 구원/이나모리 카즈오(교세라)、혼다 케이코(세계은행) 그 외」(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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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5

방글라데시와 일본의 “활동”을 잇자

안녕하세요, 비지니스 레더 팩토리의 하나미치입니다.

갑작스럽지만 문제입니다(웃음). ↑ 이 사진...우리가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앞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정답은 이쪽 ↓! Skype너머의 방글라데시의 공장의 멤버들입니다! 압권이죠.


Skype너머의 600명

비즈니스 레더 팩토리에서는 최근 방글라데시의 공장과 후쿠오카 사무실을 이어서, 방글라데시 공유회를 실시했습니다. 일본과 방글라데시의 멤버를 잇는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번부터는 아제와 어스가 준비를 맡아서 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달에 한번 개최했었는데, 하반기는 조금 간격이 생기게 되는 바람에 이번에는 2019년 최초로 방글라데시에서는 비즈니스 레더 팩토리의 멤버 전원이 총집합!

새 멤버들의 이야기

최근에 방글라데시의 공장에 새로 들어온 멤버는 9명. 각각 한명씩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오히트군. 그는 6인 가족의 장남으로 가족 모두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히트군

그녀는 아프사나 씨. 그녀는 발에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을 위하여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프사나 씨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영입하고 있지만, 현재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채용하기로 정했습니다.


1. 부모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생계를 꾸려야 할 젊은층
2. 미혼모의 여성
3. 장애를 가진 사람들

이번 함께 일하게 된 멤버도 한 사람 한 사람 「어째서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와 그녀들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비즈니스 레더 팩토리라는 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방글라데시 공유회에서는 항상 질문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욧시&핫시가 질문을 했습니다.


욧시


핫시


일본 "처음으로 가죽제품 공장에서 일하게 된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방글라데시 "80% 정도의 멤버가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라인 멤버의 전원에 대해 알 고 있는 우딘바이가 대답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멤버가 가죽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 그래도 일본의 고객이 만족하는 품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방글라데시의 공장은 창의적인 생각으로 넘쳐납니다.


일본 "공장에 다니기 전과 다닌 후, 무엇이 가장 많이 변했나요?"
방글라데시 "이 공장에 다니기 전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이 공장에서 3년간 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답을 들으며 나는 마음이 떨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의 대답이야말로, 우리들이 일하는 의의라고 느꼈습니다.


대답해준 방글라데시의 멤버

일본은 어떤 나라?

일본 측의 근황 보고에서는 10월에 오픈하는 삿포로점, 11월에 오픈하는 오이타점을 소개했습니다. 삿포로점을 소개할 때 소개한 비디오 중에 눈이 쌓인 사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방글라데시 쪽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눈이 쌓이면 모두 어떻게 걷나요?"


질문을 한 방글라데시 멤버

더울 때는 40도 안팎의 방글라데시. 확실히, 방글라데시의 멤버는 눈을 본 일도 없고, 눈 위를 걷은 적도 없네요.

일본 "부츠 같은 신발을 신는 경우도 있지만 넘어지기도 해요. 눈이 쌓이고 추우니까, 겨울은 지하상가로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지하상가에 있는 삿포로점에는 많은 손님이 옵니다."


답변해준 마코토

이런 일본과 방글라데시의 멤버의 대화를 들으며 내 머리 속에선 이런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방글라데시의 공장 멤버들이 일본에 와서 일본의 멤버와 일본의 고객을 만났으면 좋겠다.
언젠가, 일본의 멤버 전원이 방글라데시에 가서, 방글라데시의 동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언젠가는 일본의 고객도 꼭 방글라데시의 공장에 방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방글라데시 멤버의 "활동", 일본의 멤버의 "활동", 고객의 "활동"이 연결되는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 고리가 전 세계에 퍼지면, 분명 전 세계의 "활동"을 밝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비즈니스 레더 팩토리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가죽 제품을 제공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소가죽제품전문 브랜드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빈곤층에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이드라 불리는 축제 때, 대량의 소가죽이 생겨납니다. 이 소가죽을 사용한 가죽 제품 공장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내어 2014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창업한지 3년, 현재 공장에서는 약 500명을 고용, 그 가족을 포함해서 약 2,000명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2014년 3월부터 인터넷 판매를 개시, 현재 8군데에 오프라인 샵을 운영중입니다. 2015년에는 "라쿠텐 샵 오브 더 이어 2015"을 수상하고, "가이아의 새벽", "사업 구상"등의 다양한 미디어에서도 여러차례 취재를 했습니다.

▶ ︎비즈니스 레저 팩토리 공식 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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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5

과테말라인에게 배운 리더십~MAYSOL(마이 솔) 안도 소우키 현지 인턴의 배움~

안녕하세요, 지난해 10월부터 MAYSOL에서 인턴 학생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안도 소우키입니다.
동물과 아웃도어를 좋아하며 사람보다 동물들이 많고, 모닥불로 요리하는 과테말라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MAYSOL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자기소개]

사실 저는 올해 4월부터 보더리스 재팬에 입사할 예정으로 현재는 과테말라에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보더리스 재팬에서는 「페루 원주민이 자부심과 존엄성을 갖고, 꿈을 갖고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목표로 사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계기는 대학 2학년 때, 첫 해외 여행으로 중남미에 간 것이었습니다.
중남미는 치안이 나쁘고, 세기말 같은 곳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 봤더니 길을 헤매고 있으면 말도 통하지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거나 레스토랑에서 현금이 부족하면 깎아 주는 등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홈스테이를 한 집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나, 가족의 누군가는 미국에 돈을 벌러 가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거나, 곳곳에 거지가 있는 등 지금까지는 나와 상관 없던 "빈곤"라는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라틴 아메리카와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BORDERLESS HOUSE에서 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소셜 비지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다니 당시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만,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이후 소셜 비즈니스로 중남미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을 하자!라고 생각해, 페루에서 4개월간 스페인어를 배우고 과테말라의 "SPANISIMO"에서 8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란 단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역시 친절하고 쾌활한 사람들 덕분에 페루가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런 페루에서 생활을 통해, 옛 잉카의 후예인 원주민 사람들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사실은 가장 자유롭게 살 권리를 가져야 할텐데 차별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사회적 억압을 받고 있는 원주민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통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누리고, 자신들의 "인생"을 "선택"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턴을 선택한 이유]

이 인턴에서는
· 폐쇄적인 사회에 사는 원주민과의 신뢰 관계 쌓기
· 습관이 다른 과테말라인 스태프의 매니지먼트 능력
· 사람을 끌어들이는 1가지 목표로 리더십 능력
를 기르고 싶습니다.


(건설 중인 위탄오피스에서 본 풍경, 표고는 2700M 정도 됩니다.)

[일의 내용]

MAYSOL은 과테말라는 케찰테낭고 주의 위탄과 셀라라는 2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탄은 케찰테낭고 주의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로, 도로도 거의 정비되어 있지 않고 수도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밖에 쓸 수 없고, ATM도 슈퍼도 없고 사람보다 동물들이 많은 "진정한 도상국"이라는 느낌의 장소입니다. 양계 농가의 집 대부분도 Google Map에 실려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종종 길을 잃었습니다.

위탄에서는
· 각 양계 농가들의 닭과 달걀 생산률의 매니지먼트
· 새로운 양계장 공사와 양계 농가의 리크루트 먼트
· 생산 체제 구축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의 제일 첫번째 일은 한 상자에 20kg안팎의 알이 든 상자 약 10개를 각 양계 농가에서 회수하고, 그 후 날이 저물때까지 건설 중인 신축오피스의 공사를 도왔습니다. "어라, 나는 운송을 하러 왔던가? 아니면 목수일을 하려고 과테말라에 왔던가?"하는 곤혹스러운 첫날이었습니다.

그 이후,
· 각 양계장의 점검이나 양계 농가에 대한 피드백과 지도
· 닭의 컨디션 관리
· 새로운 닭장 공사의 조정
· 생산 체제의 개선
등, 폭넓은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운전면허를 갓 딴 상태에서 조심조심 픽업 트럭을 운전해서 알을 회수하거나 타 본 적이 없는 매뉴얼 오토바이로 각 양계장을 돌거나, 50kg의 먹이 봉지를 20개 정도 픽업 트럭에 쌓고 내리고, 함석판과 쇠 파이프, 시멘트 등 건축 자재를 하루 종일 실어 나르는 등, 정말로 여러가지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인턴으로서의 배움]

위탄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슈퍼바이저 루베리오 씨로부터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루베리오 씨는 위탄 출신으로 자신의 태어난 커뮤니티에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으며, NGO활동이나 독일 유학 경험도 있는 행동력이 대단한 아저씨입니다.


(과테말라 망년회에서 내년의 포부를 밝히는 루베리오씨)

이 사람은 정말로 대단하다.

우선, 기타를 치는 법이라거나 배관 공사라거나 닭의 건강관리라거나 트럭 운전라거나 가끔은 영업 활동까지 하는 등 정말 뭐든지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독서 등의 독학으로 몸에 익혔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스스로 외과 수술이라든지 하는 거 아닐까 할 정도 뭐든지 익히고 있고,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개발 도상국의 농촌부, 물건도 서비스도 인프라도 거의 없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자신의 지식, 능력, 경험치로 벽을 넘어 가야 하는 부분을 조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닭 모이를 정제하는 기계를 인력으로 배달하는 모습)

그리고 또 하나가, 일에 대한 자세와 리더십입니다. 내가 과거의 인턴 경험으로 알고 있던 과테말라인 중에는 나쁘게 말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돈을 벌어들이려는, 좀 무책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베리오 씨는 전혀 달랐습니다. 공사기간을 맞추지 못한다고 아침 4시부터 밤 10시까지 혼자 토목 작업을 할 정도로 책임감과 의지가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탄에 있는 많은 과테말라인은 그의 곁에 모이고, 그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일하고 있습니다.


(자재를 내리기 위한 지시를 하는 루베리오 씨 ※빨간 재킷)

이전, 새로운 양계장에 닭 1000마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인데도 아직 계사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절체절명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도 루베리오 씨의 한마디로 모두 흔쾌히 새벽까지 작업을 도와주었습니다. 모르는 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정말 놀랐습니다.

심야 1시를 넘을때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아무도 불평 한마디 없이 평소대로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7시에는 모두가 평소처럼 왔습니다. 왠지, 솔선해서 행동하면 사람은 따라온다는 말을, 루베리오 씨는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정말 루베리오 씨에게는 지도자로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페루에서 사업을 할 때에 루베리오 씨 같은 현지 지도자를 만날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은 2개월 간의 인턴 기간 동안 저도 루베리오 씨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멤버를 관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루베리오 씨에게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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